TC 리포트2020. 2. 3. 06:31

 

올 한해의 출장 중 가장 특별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지난 3월 부탄에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

5일간 열리는 파로축제의 마지막 날, 축제구경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안 그래도 인파를 헤치고 내려오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들어올 때 건넜던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하고 옆에 있는 징검다리 쪽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시키는 대로 했지만 뭔가 기류가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곧 이쪽으로 왕이 건너온다고!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는 여기 있으면 지나가는 왕 얼굴은 한번 보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데 우리를 본 경호원이 다리 위쪽으로 올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아, 오늘 계 타겠다는 느낌이 딱 들었다.

 

한 십 분쯤 기다렸을까! 마치 사진 속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듯,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카네를 두른 부탄 제 5대 국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우리 가이드가 현 국왕의 별칭은 People’s King이라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정말 그 단어와 꼭 맞는 소박한 모습으로 다리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한명한명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다리를 지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왕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국왕은 역시나 우리 일행 앞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그는 한국에 가는 것이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있다고 말해 우리 일행들의 열렬한 초대를 받았다.

 

그렇게 아주 특별한 우연의 순간을 만끽한 우리는 인근의 현지 가정집을 방문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평범한 가정집이지만 거실 벽면 가득 왕실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서, 가이드의 자부심 어린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부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왕에 대한 애정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왕이니 왕실이니 하는 것들이 별로 와 닿지도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국민들이 그들에게 보이는 애정이나 존경을 조금은 삐딱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잠깐이지만 왕이 그의 국민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그들의 왕을 대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가슴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내년 3월 말, 역시나 파로 축제 기간에 부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뜻하지 않은 일들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할까. 은둔의 왕국, 행복의 나라 부탄에서 펼쳐질 여정들이 기대된다. [신한지]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