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20. 2. 10. 06:40

 

 

지난 5월 스페인 북부 여행 시, 우리의 여정은 순례자처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쳤다. 당시 나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눈물짓는 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광장 가운데서 서로 부둥켜안으며 거리낌 없이 울었다. 그들이 왜 우는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인솔자가 아닌 순례자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9월, 마침내 한 달간 휴가를 내고 순례자로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은 굉장히 많다. 그 중 나는 첫 순례길이기에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길을 택했다. 대개 프랑스의 생 장 피드 포르가 순례 기점이지만 나는 스페인의 팜플로나부터 시작했다. 우리 스페인 북부 여행에서도 처음 방문하는 순례자 도시가 팜플로나니 나에게 의미 있는 도시였다.

 

550km 가량을 걸은 무리한 여정이다 보니 다녀온 후에도 한참동안 발목과 오금, 허리 등에 찌릿한 후유증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순례길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라 할 정도로 매일이 행복했다.

 

걷는 거리가 워낙 길어 분명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순례자의 삶은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만 걷고 싶으면 그만하면 되니 말이다. 게다가 매일 같은 차림으로, 같은 생활을 반복하니 이보다 더 심플한 삶이 있겠나 싶었다. 아마 이런 단순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매일 걸으며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곳들을 봤지만, 결국 그 길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온 터라 열린 마음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러다보니 어느 여행지보다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말을 붙이기도 굉장히 쉬웠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오늘 얼마나 걷고 어디까지 가는지를 물으며 말문을 텄고, 카미노 공식 질문인 왜 왔냐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기하게도 여러 문화권에서 온 다양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다보니 어느새 내 고민도 정리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걷는 동안 온몸을 찌릿하게 채우던 고통들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순례길의 흔적처럼 남아, 역설적이게도 그 길을 그립게 한다. 아무래도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을 것 같다. [이병철]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