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와 함께 한 특별한 여행
이번 요르단 시리아 여행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 했습니다. 방송작가 김수현 선생님과 톱배우 몇 분이 동행한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일정을 조금 조정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여행지에서의 불편함은 반드시 그 만큼의 대가를 얻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원래의 여행프로그램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날씨부터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다마스커스엔 중동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폭설과 함께 기습적인 한파가 여행을 방해했습니다. 요르단으로 들어가니 일부 도로가 폐쇄될 정도로 심한 모래 폭풍이 전국을 휩쓰는 중이었습니다. 사해에서는 바다에 누워 책을 보기는커녕 발도 담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이쯤되자 와디람 사막에서의 텐트숙박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날씨에도 불편한 사막 야영인데, 이런 궂은 날씨라면 정말 끔찍한 하룻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의견을 따를걸 그랬나’하는 은근한 후회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페트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기온도 여행하기에는 최적이었습니다. 페트라의 위대한 유적을 앞에 두고서니 지난 며칠 동안의 흉포한 날씨도 다 용서되었습니다. 페트라 하나만으로도 먼 길을 떠나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텐트에서 불쑥 나온 그 여배우는 심난해하는 후배 연기자에게 '아유! 결벽증도 아니고... 사막에 왔으면 여기에 맞춰야지, 하루쯤 세수 안하면 어때? 난 세수 안할거야'라고 말하고는 모닥불을 향해 걸어 나갔습니다. 김수현 선생님도 '어디 별이 얼마나 떴나 볼까?'라며 지금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모닥불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PD 감독님과 한 배우는 직접 김치찌개를 끓여 여행을 함께 온 모든 일행들(일반인이라고 해야 하나요?)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까탈스럽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정말 소탈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이어서 초청한 벨리댄서의 열정적인 춤과 함께 사막의 밤이 깊어만 갔습니다. 잠자리의 불편함 따위는 이미 잊은지 오래였습니다. 모닥불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밤하늘의 별들은 점점 그 빛을 더해만 갔습니다. 그날밤 우리 일행 모두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귀국을 서두르는 순간에 김수현 선생님이 넌지시 이런 말을 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고춧가루 아니었어?' 혹시 여행에 방해가 되진 않았는지 묻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때는 답을 못 드렸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고춧가루 맛이 참 달고 따듯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