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 12. 6. 06:00



오래 전 인도 배낭여행 중 한 꼬마 철학자에게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녀석을 만난 곳은 바라나시의 미로 같은 골목 안에 위치한 허름한 한 식당이었습니다.

따끈한 짜이를 마시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한 꼬마가 다가오더니 불쑥 스케치북을 내밀었습니다.

인도에서 흔하디 흔하게 겪은 바로는 이건 십중팔구 구걸을 하거나 뭘 사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레짐작하고 곁눈으로 꼬마를 힐끗 보았습니다. 그런데 스케치북에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낙서가 가득했습니다. 갑자기 꼬마에게 흥미가 일었습니다. 

 '날더러 어쩌라는 거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에게, 꼬마는 뜬금 없이 산을 그려보랍니다. 심심하던 차에 놀 꺼리다 싶어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오면서 보았던 산을 그렸습니다. 몇 그루의 나무도 그렸습니다.

내 그림을 한참 쳐다보더니, 이번엔 꼬마가 능숙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린 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내 눈앞에는 내가 그린 뾰족한 삼각형의 산과는 정반대의 역삼각형 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꼬마는 의젓하게 "한사람만 오를 수 있는 산보다는 여러 명이 다같이 오를 수 있는 산이면 좋겠어" 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뒤통수를 한대 아주 쎄게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르기는 쉽지만 최후의 한사람만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뾰족한 산과, 오르기는 힘들지만 여럿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넓은 정상이 있는 산.

지금은 그 식당 이름도, 꼬마의 이름조차도 잊었습니다. 하지만 그 꼬마가 그려준 역삼각형의 산은 마치 화두처럼 내 머릿속에, 그리고 또 내 맘속에 남아 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