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는 여행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는 아닙니다. 대개는 폴란드에서 헝가리로 가거나, 반대로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갈 때 도로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들르게 되는, 그냥 경유지 정도입니다.

그런데 슬로바키아엔 유난히 샛노란 해바라기 밭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난 이 해바라기 밭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소피아 로렌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가 있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전쟁에 나간 남편을 찾아 러시아를 헤매는 소피아 로렌 앞에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피아 로렌은 결국 남편을 찾았지만 이미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러시아 여자의 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쓸쓸하게 혼자 돌아오는 소피아 로렌을 태운 기차 역시 해바라기 밭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촬영된 것은 아니겠지만 난 묘하게도 자꾸만 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해바라기가 생각난 것은 어쩌면 슬로바키아가 가졌던 오랜 고난의 역사가 소피아 로렌의 쓸쓸함에 투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함께 9세기에 대모라비아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헝가리 서부와 폴란드를 점령하며 이 지역에선 꽤 강대한 국가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100년도 가지 않았습니다. 10세기 들어서자마자 헝가리 마자르족의 침입을 받아 그 후 무려 1,000년 동안이나 체코와 분리되어 지배를 당했습니다. 1차대전후 잠시 독립을 이뤘으나 국제 역학관계에 의해 헝가리, 폴란드에 땅을 떼주어야 했고, 2차대전 후엔 또 소련에 국토의 일부를 할애해 주어야 했습니다. 
소련의 영향권에서 겨우 벗어난 1992년엔 체코와 분리해 따로 독립했는데 오히려 이 점이 슬로바키아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암튼 이런 해바라기 밭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순 없습니다. 잠시 내려서 해바라기 사이를 아이들처럼 신나서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헝가리와 폴란드 사이엔 반스카 비스트리차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냥 점심 먹기 위해 들르지만 그렇게 지나치기엔 참 아까운 도시입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아담한 도시지만 슬로바키아에선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입니다. 15세기엔 최초의 노동운동이, 19세기엔 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나치 독일 시절엔 민중봉기가 시작된 도시가 바로 반스카 비스트리차입니다. 즉,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슬로바키아의 오랜 숙원인 독립과 자유를 향한 저항의 도시였습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중심인 SNP 광장입니다. 이 도시의 모든 볼거리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몰려 있습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 뿐 아니라 슬로바키아의 많은 도시에도 SNP 광장이 있습니다. SNP는 바로 '민중봉기'를 뜻하는 슬로바키아어 약자입니다.






SNP 광장엔 나치 독일로부터 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킨 소련군을 기념하는 탑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북쪽 끝에 있는 성 알주베티 교회입니다. 1303년 처음 만들어졌고, 그 후 개축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모습이 변해갔습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성 알주베티 교회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확실히 좀 더 고풍스러워 보입니다.  





인근의 슬로바키아 아이들도 이곳으로 소풍왔습니다.






SNP 광장의 전체 모습입니다.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역시 멋집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오래전부터 동과 은을 정제하던 광업도시로 발전했습니다. 한때는 유럽 전역으로 동을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원이 고갈되면서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수공업 도시로 변모했고, 지금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관광도시로 변모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