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 3. 6. 06:00



얼마전 아주 심각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 내용입니다.

취업전문사이트인 잡코리아가 남녀직장인 932명을 대상으로 '실제 이민이 가능하다면 한국을 떠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무려 76%의 직장인들이 "떠나겠다"고 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76%가 한국에서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이니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면 뭐하고, OECD 국가면 뭐하고, 경제규모 세계 13위면 뭐하겠습니까?

설문대상이 좀 적긴 하지만 지난해말의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니 잡코리아 조사가 과히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갤럽은 148개국 35만명을 대상으로 '자유 이민이 가능하다면?'이란 주제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만약 전세계가 자유 이민을 실시한다면 한국은 인구의 8%가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으로 이민오고, 한국에서 이민나간 사람을 합한 수치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란 얘기입니다. 더 심각한 건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는 무려 29%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에서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한 나라는 싱가포르,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호주 순이었습니다. 

잡코리아에서 조사한 한국 직장인들에게 인기있는 나라도 비슷했습니다.  호주가 1위였고,
스위스 일본 캐나다 프랑스 영국 미국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순이었습니다. 이들 국가를 선호한 이유는 복지와 자연환경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설문조사를 보고 난 어떤가 생각해봤습니다.





운전할 때(?) 빼고 딱히 한국을 뜨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진지하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 대만족 하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 가족이 여기에 살고 있고, 친구들이 여기에 살고 있고, 무엇보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술마시고 싶을 때 술 마실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밖에 없는지라 이 즐거움을 포기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외국을 여행하면서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그럼 어느 나라에서 사는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팍팍한 사회생활에 신물나 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50여개국을 다녀보면서 '그래, 바로 이 나라야'하는 곳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름 장단점들이 있지만 내가 앞으로 영원히 살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면 신중치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엔 노르웨이가 유력 후보였습니다. 어딜가나 그림 같은 풍경에 탄탄한 복지정책, 그리고 조용한 평화가 딱 내 취향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 직접 살고 있는 사람의 얘길 듣곤 자신없어졌습니다. "1년중 6개월은 해가 짧은 겨울이고, 큰 도시라야 30분만 걸으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살아보니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곳'이란 얘기입니다.
해가 갈수록 추운 게 점점 더 싫어지는 나로선 겨울 6개월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말 노르웨이를 돌아다녀보니 우울증 걸리기 십상일만큼 너무 조용해서 그것도 문제다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늘 시끌벅적지근한 한국에 너무 익숙해져서 갑자기 고요하면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연중 날씨가 좋은 뉴질랜드는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곳 역시 지인이 만류합니다. 이 분은 한국의 재산을 처분해 뉴질랜드로 투자이민을 가신 분입니다. 수영장까지 딸린 널찍한 집에 골프장은 걸어서 10분거리내에 있다고 처음엔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딱 6개월 좋았을뿐 그 후엔 심심해서 못 살겠다며 걸핏하면 전화해서 "한번 놀러오라"고 성화입니다. 나 역시 심심한 건 질색이니 뉴질랜드도 아닙니다.

친구가 몇 살고 있는 미국은 총기사고가 자주 나서 싫고, 프랑스는 자유로움은 좋은데 아무래도 문화적인 이질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이탈리아는 사람들이 유쾌한 건 좋은데 너무 시끄러워서 싫고, 일본은 간판 글씨만 다를 뿐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도시 환경이 마음에 안들고....

그러다가 '이 정도면 한번 살아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곳을 한군데 발견했습니다. 바로 영국 옆의 아일랜드입니다.





아일랜드 관광청 초청으로 일주일 간 여행해 본 아일랜드는 한마디로 풍경이 우리의 제주도였습니다. 특히 어딜가나 돌담을 쌓아 경계를 표시한 게 딱 제주도입니다. 사람들 역시 어딘지 모르게 한국 사람을 닮았습니다. 생김새가 아니라 기질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쾌활한 듯 우울하고, 가족간의 우애 끔직하게 생각하고, 손님 오면 귀하게 여겨주고, 어딜가나 밥 많이 주는 정도 있고... 수천년간 끝도 없이 이어진 침략을 꿋꿋하게 극복해온 역사가 비슷해서 기질도 닮은걸까요?


아일랜드가 마음에 드는 점은 또 하나 있습니다. 아일랜드 명물 기네스 맥주입니다. 이 텁텁한 흑맥주에 일단 맛을 들이고 나니 우리 소주나 막걸리 처럼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암튼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일랜드에서 난 여타 유럽국가들과는 분명 다른, 왠지 모를 동질감에 끌렸습니다. 


그렇다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정말 이주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1년 정도는 살아보고 싶습니다.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서도 각각 1년씩 살아보고 싶습니다.

왜 꼭 한나라에서만 살아야 할까요?
쓰다보니 비약이지만 국가선택권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1-2년마다 한번씩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꺼이 말리나 콩고같은 아프리카를 포함해 5대륙 모두에서 살아볼텐데
...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