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1. 11. 7. 06:00


9월과 10월 두 달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쉬기로 작정했습니다.

원래 테마세이투어의 모든 직원은 1년에 한 달의 휴가가 보장되지만 ‘사장’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두 달간 날 찾지 말라고 공포하고는 남도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많이 지쳐있기도 했지만 이쯤에서 한번은 쉼표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면서 혼자 한참을 웃었습니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지라 허구한 날 하는 일이 여행인데, 휴식의 방법 또한 여행이니 조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난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자칫 ‘직업’ 또는 ‘일’이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면 가장 좋아하는 그것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올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부양가족으로 인식된다면 어떠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내게 있어서 여행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날 여행이 직업상 할 수 없이 가야하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정말 서글퍼질 것 같습니다.

나는 여행을 사랑하지 일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일 여행이 일로 생각된다면 언제든 여행업을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어 왔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지쳤었나 봅니다. 내 마음속에 꿈틀대던 이글거림이 조금씩 둔화되어가고 있으니…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모처럼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전라남도 무안의 작은 해변, 갯벌 바로 앞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해가 지고나면 정적에 잠기는 고즈넉한 곳입니다.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와 영암 월출산 등산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떠나온 터였습니다. 몸뚱이는 가둬두고 머리는 비워둘 요량이었습니다. 남도에 체류하는 내내 적당한 크기의 쓸쓸함이 기분 좋았습니다. 저녁 햇살을 받은 황금들녘의 출렁임, 장터 국밥집에서 들려오는 거친 사내들의 걸죽한 입담, 갯벌위를 날렵하게 기어다니는 게들의 민첩함 따위에 잠시 관심이 갔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행복을 충분히 즐겼던 여행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선 미얀마의 바간으로 날아갔습니다. 새벽을 알리는 마당 빗질소리에 잠에서 깨어 사원에 올라 일출을 맞이하고, 저녁 무렵엔 붉은 노을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어둠에 잠겨가는 평원을 응시하는 것,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사무실에 나와 앉았습니다. 속이 거북할 땐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위장이 비어야 식욕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두 달 동안의 공백, 아무 것도 하지 않다보니 이젠 아무 것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다시금 뜨거움이 솟구칩니다. 내 마음은 벌써 곧 떠나게 될 아프리카의 평원을 달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