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1. 6. 9. 06:00




난 지금 프로방스와 코트 다쥐르로 이어지는 남프랑스 여행 중에 있습니다.

어제 투숙한 아비뇽의 호텔은 1611년에 건설된 성 루이스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이었습니다. 명색이 아비뇽의 최고급 호텔입니다. 무려 400년이나 된 건물이니만큼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육중한 건물의 무게감이 우리들을 압도했습니다.

같이 한 일행들에게 방을 배정하고 난 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급히 내 방을 찾아갔는데, 아무리 빙빙 돌아도 도저히 방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헤매기를 30여분, 드디어 내 방번호를 알리는 화살표를 발견했습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곳은 방이 아니라 수도원의 부속성당 상층부였습니다. 성당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는지 불이 꺼진 성당의 제대가 발밑에 어렴풋이 보였고, 성상 조각 몇 개와 퇴색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성인 그림이 나로 하여금 오싹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성호를 그어보고는 성당을 가로질러 가니 또 다른 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내 방은 거기에도 없었고 작은 문에 방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약간은 떨리는 기분으로 문을 열었더니 위로 올라가는 좁은 나선형 계단이 보였습니다. 순간 키를 건네주며 이 방은 아주 특별한 방이라면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던 지배인의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여하튼 한참을 올라가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방은 무척이나 좁고 길었습니다. 게다가 겨우 작은 창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뜻밖에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창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쪽문이었던 듯 싶었습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바로 눈앞에 성당의 종탑이 보였습니다. 종은 매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이 방이 종지기의 숙소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대에 몸을 뉘이기는 했지만 영화에서 본 ‘노틀담의 곱추’ 생각도 나고, 누군가 창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오늘 숙박한 곳은 생 레미에 있는 샤또 호텔입니다. 하늘로 치솟은 플라타너스 사이로 난 마차길을 따라 들어간 샤또는 12세기부터 이곳에 거주한 대지주 가문의 대저택이었던지라 우리 일행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해 했습니다.




하지만 방배정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호텔의 경우 분명 집주인의 호사스런 방이 있는가 하면 하인의 방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복불복이니 운에 맡기기로 하고 키를 나눠가졌습니다. 잠시 후 각 방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정원까지 흘러 나왔습니다. 아마도 서로 방 구경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종업원들의 극진하고도 정중한 대접을 받으며 즐긴 만찬도 우리들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했습니다.

난 사각형의 현대식 건물이 싫습니다. 기회만 닿는다면 수도원이나 샤또 호텔 같은 특별한 곳에서 묵고 싶습니다. 물론 방이 일정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특별한 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위해선 감수해야할 일입니다. 호텔숙박도 중요한 문화체험의 하나입니다.

앞으로 계속될 남프랑스 여행에서도 아비뇽의 수도원 호텔이나 생 레미의 샤또 호텔은 꼭 예약할 생각입니다. 단 수도원 호텔의 종지기방 115호실만은 빼고…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