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폴란드를 여행하는 이유는 홀로코스트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와 수백미터 땅굴을 파고 내려간 거대한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은 이 분야에선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단연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총 9층으로 되어 있는 소금광산은 갱도 깊이가 무려 300m 에 달하고,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갱도의 총 길이가 300km에 이릅니다.






무엇이 되든 거대한 것엔 전설이 따릅니다.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먼 옛날 킹가 공주가 있었습니다. 폴란드 왕과 결혼하기 위해 폴란드로 향하던 킹가 공주는 트란실바니아의 소금물 습지에 있는 샘에서 걸음을 멈추고 약혼 반지를 그 속에 넣었답니다. 트란실바니아는 드라큐라 백작으로 너무나 유명한 브란성이 있는 곳이니 킹가 공주는 루마니아인이었던 모양입니다. 왜 소중한 약혼 반지를 물 속에 넣었는지도, 시점도 명확치 않습니다. 전설이니까요...

암튼 킹가 공주는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비엘리치카를 지목하고 암염 광산을 개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엄청난 소금이 그곳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소금 광산 발견은 지금으로 치면 유전 발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만큼 귀하디 귀한 게 소금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개발된 소금은 폴란드 왕국 재정의 30%를 차지할만큼 막대했고, 이게 모두 킹가 공주의 덕이었으니 전설이 될만도 합니다.

암튼 소금 광산을 개발한 비엘리치카 주민들은 지하 100m 지점에 킹가 공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거대한 소금 예배당을 만들었습니다.






지하 예배당은 길이 55m, 폭 18m, 높이 12m의 공간으로 제법 웅장해 보입니다. 비록 지하에 있지만 이 예배당은 지상의 교회와 똑같이 제단이나 촛대, 갖가지 조각상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설을 넘어 소금광산의 수호신으로 승격된 킹가 공주에게 채굴 작업의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소금광산이 있는 마을인 비엘리치카란 말 자체가 '거대한 소금'을 뜻합니다.






지하 갱도에 내려가기 위해선 보통 현기증 나도록 빙빙도는 계단을 이용하고 올라올 때는 빨간색 철제 펜스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 화수분같이 폴란드 왕국에 700년간 부를 안겼던 소금광산도 17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산출량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갱도는 폐쇄되었고, 일부만 사진처럼 갱목으로 안전 장치를 더해 여행자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보통 암염 광산은 압력이 워낙 강해 채굴할 수 있는 기간이 몇 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만은 예외였습니다. 암염층이 다른 광산과 달리 엄청나게 단단했기 때문입니다.






킹가 공주 기념 예배당을 중심으로 소금광산엔 많은 조각상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이 광산에 채취된 암염이 재료고,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소금광산의 규모와 함께 이 조각상들의 존재가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을 세계문화유산이 되게 하였지만 사실 조각 솜씨는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닌 만큼 좀 조잡합니다.











예배당이니만큼 당연하지만 조각들은 대부분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 최후의 만찬 등 성서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지하에는 박물관도 있습니다. 중세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산 기술의 발전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습니다.






지하 박물관에는 보존 상태가 좋은 오래된 바퀴의 굴대, 수차, 가축의 힘을 이용해 움직였던 권양기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의 전시물들도 소금 조각만큼이나 뭔가 엉성해 보였습니다. 원래 지하세계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런 조잡성으로 인해 폴란드의 소금광산은 그 명성에 비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기대가 컷던 탓인지도 모릅니다.  






광산이 개발된지 수백년이 지나면서 최근들어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의 갱도엔 자꾸만 물이 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