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1. 3. 28. 06:00




언제부터인가 홈쇼핑을 통한 여행상품 판매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끔 그 광고를 볼라치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싼 가격에 놀라기도 하지만 ‘즐거운 여행’ 또는 ‘재미있는 여행’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쇼핑호스트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여행’과 가장 밀접한 단어가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니 즐겁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나에게도 즐거운 여행을 위한 충고가 가끔 들어오곤 합니다. 여행업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입이 무거워서야 되겠느냐고 질책해오기도 하고, 유머 책을 사서 미리 읽어보고 오라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즐거운 여행이 될까요? 모 여행사가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참 잘한다고 하기에 비결이 뭔가 알아보았더니 여행을 갈 때마다 휴대용 노래방 기기를 들고 다니면서 신나게 해준다는 게 비법(?)이었습니다. 아무리 긴 이동시간이라도 지루해할 새가 없으며,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조금만 더 버스에서 놀다 내리자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또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어떤 전문 인솔자는 여행 중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유도하여 고객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고 자랑이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만들기 위한 의무감은 가이드들도 갖고 있기 마련인데, 버스에서 이동 중에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가이드들도 꽤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신변잡기를 다 동원하여 결코 지루하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고 보면 테마세이투어는 참 재미없는 여행사입니다. 버스 안에서 돌아가며 노래 부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여행자끼리 친목을 도모하도록 일부러 자리 만드는 일도 금기 사항
중 하나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 해대는 가이드는 기피대상이니 말입니다. 하다못해 식사시간에 긴 테이블에 일렬로 앉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신나게 놀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친목도모와 사교를 위함도 아닙니다. 여행의 목적은 그저 여행일 뿐입니다.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여행은 조금 쓸쓸해도 좋고 조금은 우울해도 좋습니다. 약간은 고생스러워도 좋으며 약간은 당혹스러워도 좋습니다. 즐거움이 여행의 주재료라면 여기에 적당한 쓸쓸함과 적적함, 긴장감과 모험적인 요소가 양념처럼 버무려져야 여행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입니다.

길건 짧건 여행길에는 삶이 존재합니다. 기나긴 삶의 흔적들이 축적된 유적도 만나게 되고, 현재진행형의 다양한 삶의 형태도 만나게 됩니다. 그 삶속에 어찌 즐거움만 있겠습니까? 그 안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온갖 삶들을 음미하기에는 시간이 짧기만 합니다. 여행을 좀 더 차분한 분위기로 꾸며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행, 꼭 즐겁기 위해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