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1. 2. 27. 06:00



미얀마엔 민주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요즘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바람이 아랍권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군부독재국가인 미얀마를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접해온 미얀마의 정치상황은 ‘숨 막히는 장기 군부독재, 그리고 이에 맞선 아웅산 수지 여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의 저항’으로 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얀마 현지의 분위기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 조차도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아웅산 수지여사는 ‘분리주의자’라는 것입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소유한 미얀마는 크게 샨족, 버마족, 몬족으로 대표되는 여러 종족이 섞여 사는 나라입니다. 미얀마의 역사 또한 이들 세 민족간의 세력 다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의 종족 갈등은 영국이 식민지 시절 자행한 분할통치정책으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세력이 가장 큰 버마족을 견제하기 위해 샨족, 몬족, 카렌족을 집중적으로 등용, 버마족과 비버마족의 대립구도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이는 식민통치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독립후 종족간의 내전이라는 혹독한 후유증을 겪은 바 있습니다.

미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과 일본에서 독립한 이후 미얀마의 소수민족들은 끊임없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샨족과 몬족도 그렇지만 최근엔 영국의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를 받아 들인 카렌족이 독립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아웅산 수지 여사는 각 민족의 자치권 보장과 궁극적인 분리독립을 주장하면서 1990년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비버마족의 절대 지지를 받았던 것은 물론입니다. 이는 곧 미얀마의 분열을 의미하며, 미얀마의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서방세계로서도 대환영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미얀마인들은 바로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나 본 미얀마인들은 "우리에겐 분명 민주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지 여사를 무조건 지지하기도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독립 후 미얀마 전역을 피로 물들였던 오랜 종족간의 내전이 또 벌어질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90년도의 선거 결과를 무효화한 현재의 군사정권도  ‘아웅산 수지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는 곧 미얀마의 분열’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군부독재를 증오하는 사람들조차 이 논리 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미얀마 풍경 1

2,000여 개의 불탑이 평원에 펼쳐져 있는 바간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불탑을 붉게 물들이는 바간의 일몰은 언제나 봐도 정말 일품입니다. 한 사원의 꼭대기에서 맞이한 일몰은 그 고즈넉한 정취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상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갑자기 나타난 미얀마인들 때문에 일순간에 깨졌습니다. 갑자기 3-4대의 트럭 짐칸에 잔뜩 실린 미얀마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온 것입니다. 단체로 여행 온 시골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비좁은 트럭짐칸에 촘촘히 앉아 있는 그들은 모처럼의 여행에 고무된 듯 너무나 행복한 표정들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이처럼 행복한 표정의 단체를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미얀마인들은 연신 싱글벙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주위가 졸지에 시끄럽게 됐지만 조금도 불쾌하진 않았습니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그래, 군부독재면 어때? 저렇게 행복한 걸...이 땅에 민족간의 분열과 갈등이 재연되면 안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얀마 풍경 2

물론 미얀마의 군부독재를 옹호할 생각은 새끼 손톱 밑의 때 만큼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선 실제로 독재의 폐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인레호수에서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원래 양곤으로 직행해야 할 비행기가 갑자기 이름도 생소한 라카인을 경유해서 돌아간다는 일방통보를 받았습니다. 라카인에 착륙한 비행기는 우리들을 찜통더위 속에 1시간 이상이나 기내에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군인들이 비행기를 에워싸고 보초를 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침 승무원 중 한명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아가씨였던 터라 도대체 누가 오길래 이 난리냐고 물어보았더니 주위 눈치를 보며 속삭이듯 한국말로 대답했습니다. "나쁜 자식이 타요"

그 '나쁜 자식'은 현 독재자의 딸이었습니다. 딸 일행이 타니 비행기는 아무 사과방송도 없이 휙 출발했습니다. 딸을 태우기 위해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탄 비행기 항로까지 바꾸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군부독재의 오만함과 폐해를 단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옆자리의 프랑스인은 미얀마가 빨리 민주화 되어야 한다며 낮은 목소리로 격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유리같이 아슬아슬한 그들의 행복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바람이 어디까지 진행될까요?
요즘 중국도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데 과연 미얀마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물론 민주화는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리비아의 예에서 보듯 이게 종족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상황은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민주화에 성공한다해도 그 후유증으로 인해 자칫 내전으로까지 번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피를 흘려야할 것입니다.

미얀마를 떠나면서 군사독재정권이건 민주화건, 통합이건 분리주의이건, 그게 무엇이든 그저 좁고 불편한 트럭 짐칸일지라도 행복에 겨워하는 그들의 순박한 삶을 방해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유리같아 보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