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1. 4. 8. 06:00


잉카의 전설에 의하면 파차카막이 우주를 창조하고 대지를 만들면서 ‘모든 것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안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잉카인의 영혼의 고향인 티티카카 호수, 태양의 섬에서 바라 본 세상은 너무도 평온하게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하늘과 구름, 산과 호수, 심지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돌 하나까지도 마치 수억 년 동안 변함없이 꼭 있어야 할 곳에 그 모양 그대로 있는 듯 했습니다. 단지 사람들만이 제 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듯 분주히 오갈 뿐이었습니다.

멩한 눈빛의 인디오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라파스를 지나 포토시에 도착했습니다. 한 때 전 유럽 은(銀) 유통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했던 영광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옛 영화가 사라진 퇴색한 거리엔 쓸쓸함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밤새 양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괜한 감상에 빠져 잠을 설치게 했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우유니 사막에 진입했습니다. 며칠째 뒷머리를 잡아당기던 고산증세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광활한 소금 호수 위로 붉은 석양이 번져나가는 순간, 먼 길을 달려 볼리비아까지 찾아온 이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날 묵은 호텔은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진 곳이었습니다. 침대도, 식탁도, 심지어 벽과 바닥도 모두 소금덩어리였습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운치 있는 실내 가구들에 반한 우리 일행들은 이대로 잠들기 아깝다며 밤늦도록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습니다.

다음날, 꿈결과도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우유니 소금호수 위를 유영하듯 떠다녔습니다. 지평선 너머까지 맑고 투명한 거울이 깔리고, 그 안에 하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담긴 동화 같은 세상, 그곳에서 보낸 하루는 정말 이채롭고 신비로웠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공간감각마저 마비된 세상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은 도저히 현실감이 없어보였습니다. 마치 순간적인 공간이동을 감행하여 4차원 세계로 빨려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간혹 들리는 웃음소리가 이곳이 지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




이번 안데스 여행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볼리비아 남부 알티플라노 고원을 질주하며 맞이했습니다. 알티플라노, 그곳은 필경 지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해발고도 4,000m∼5,000m 사이를 질주하는 지프차 안에서 바라본 고원은 처절하리만큼 고독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흉하게 일그러진 대지에 흐르는 적막감이 두렵기도 했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푸른 호수를 만나는 순간에는 가슴 가득 환희가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간 문득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만일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알티플라노의 고원이 그려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 거친 땅에는 생명체 대신 온갖 감성들이 꿈틀거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유니 사막과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숨 가쁘게 달려왔던 거친 여정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평화로운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온 몸 가득한 흙먼지를 털어내고 사막을 향해 열려있는 호텔 발코니의 안락의자에 몸을 눕히고 보니 주먹만 한 별들이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금껏 달려온 아련한 길들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외계인이 나타나 ‘우리별에 온 것을 환영해!’라고 말을 붙여올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은 푸른 지구를 여행하는 호사를 누릴 차례였습니다. 바릴로체 호수지역을 거쳐 엘 찰텐에서 피츠로이산 트레킹이 이어졌고, 우리들의 발길은 지구의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 호사는 거친 길을 달려온 수고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