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투어 생각2010. 11. 4. 09:46

외국인이 보는 한국의 흥미로운 볼거리와 우리가 외국인이 좋아할거라 생각하는 볼거리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한 프랑스 화가의 한국여행 인상기입니다. 
 
몇해전 그가 부부동반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프랑스에서 신세진 빚도 갚을 겸 해서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하던 한국의 시골마을등 몇군데를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 친구는 제주도, 경주, 설악산등 한국의 명소들을 보기 위해 열흘 일정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 프랑스 친구에게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나온 대답이 정말 의외였습니다.

우선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간판'이랍니다. 서울 어딜 가든 서로 '날 좀 봐달라'고 애원하듯 다닥다닥 걸려 있는 간판을 보는게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뜻밖이라 "아니 그 간판이 뭐가 재밌어? 우린 지금 저게 보기 싫다고 간판을 모두 작게 바꾸고 있는 중인데?"라고 했더니 이 프랑스 친구 하는 말이 정색을 하며 "왜 그래야 하느냐?"며 오히려 되물어왔습니다.

이 친구 얘기는 "서울이 유럽 같이 깨끗하기만 하다면 유럽인들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복잡한 간판을 보면서 활기를 잃은 유럽과 달리 한국의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음 가장 신기했던 곳은 '일산'이라고 했습니다.  
집이 있는 일산으로 한번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여긴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도시"라고 했더니 굉장히 놀라워했습니다. 그는 건물들을 가르키며 "이것도 아파트고, 저것도 아파트란 말이야?"라고 연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사이의 보행자 도로와 공원들을 둘러보고는 "전부 아파트 뿐이라서 삭막할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와보니 살기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구 50만명이 사는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대도시는 전세계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기뿐 아니라 다른 유럽인들도 일산에 오면 무척 신기해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걸작은 세번째입니다. 

이번엔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았는데 그게 '무덤'이랍니다.  
무덤? 이건 또 무슨 소릴까? 

한국의 시골을 보고 싶다는 그를 충남의 고향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 내려가는 길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참 후에 물어왔습니다.
"근데 오면서 보니까 산에 볼록볼록한게 있던데 그게 뭐지?"
"뭘 말하는거지?"
그가 가르키는 쪽을 보니 무덤이었습니다.
"저게 어떻게 보이는데?"
"저 곡선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
"저건 우리 무덤인데?"
"정말? 저걸 좀 가까이서 볼 수 없을까?"
그래서 고향마을의 선산에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이 친구 이러저리 봉분을 쓰다듬어 보더니 하는 말이 "마치 여자의 젓가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둥근 산세와 무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 얘기가 너무 독특해서 한편으론 '한국의 다른 여행지가 별로였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제주도, 경주, 설악산 등 가는 곳마다 전부 아름답긴 했지만 간판과 일산과 무덤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이것들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가 예술가라 예술가 특유의 유별난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혹은 자신의 나라와 다른 점에 끌린다'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서울'이 단순히 서구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여행지로서 서울의 매력은 오히려 꽝이 될 것입니다.

암튼 이 프랑스 친구는 보름만에 '한국에선 죽은 사람은 산 위에서 살고, 산 사람은 산 아래에서 산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에 이메일이 왔습니다.
간판과 일산과 무덤을 찍은 동영상을 주변에 모두 보여주었는데 전부 자기 처럼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하고, 아름다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