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트는 기독교인들에겐 매우 낯익은 이름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주 고린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유명한 '고린도 전서'가 씌여진 곳이 바로 이곳 코린트입니다. 암튼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코린트는 오랜 고대 도시이고,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당시 코린트는 거대한 국제 도시였습니다.

코린트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과 같은 곳입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미케네, 코린트, 올림피아 등 고대 문명의 고향이며, 그리스 문화의 원천입니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을 이용해 코린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역과 교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허리처럼 잘록한 부분은 땅을 파서 운하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코린트 운하입니다.







코린트 운하의 역사는 상당히 깁니다. 로마의 네로황제때부터 이곳에 운하를 만들기 위해 유태인들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때는 실패했습니다. 현재의 코린트 운하는 프랑스에 의해 1882년부터 12년간의 난공사끝에 만들어졌습니다. 

코린트 운하 건설로 인해 아테네에서 이탈리아까지 무려 320km나 항로를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노고에 비해 영화는 너무나 짧았습니다. 넓이가 25m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적인 대형 선박에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끔 작은 배들이나 지나다니는 한가한 운하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코린트 운하에선 번지점프가 가능한 모양입니다. 이곳저곳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수면까지 깊이가 60m에 달하니 뛰어내리면 아찔하긴 할 겁니다.







운하에서 1시간 정도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달리니 고대 코린트 유적이 나타났습니다. 우선 박물관부터 들러 오리엔테이션 삼아 전시되어 있는 유물부터 살펴봤습니다.












코린트의 기원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엄청나게 오래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코린트 유적박물관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시절을 거쳐 로마시대까지의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로마 시대의 것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스의 아이들은 자주 견학을 다니는 모양입니다. 웬만한 유적지에선 한두번 정도는 단체로 온 아이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코린트의 도기와 항아리들은 매우 유명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코린트 항아리들이 발견될 정도입니다. 코린트는 기원전 7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항아리만 봐도 코린트가 얼마나 대단한 무역도시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드디어 고대 코린트의 유적으로 들어가봤습니다. 고대 코린트의 상징은 거대한 기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아폴론 신전입니다.







아폴론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 졌으니 무려 2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현존하는 신전 중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합니다.







현재 아폴론 신전의 기둥은 7개만 남아 있습니다. 단순한 도리아식 기둥이 오히려 남성적인 완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원래는 38개의 원기둥이 떠받치는 신전이었다 하니 규모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판판한 돌이 깔려 있는 레카이온 거리입니다. 고대 코린트가 얼마나 번화한 도시였는지를 가늠케 해줍니다.

지금 고대 코린트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거의 모두 로마 시대 것입니다.







아크로코린트 산을 배경으로 고대 코린트의 돌기둥들이 복구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코린트를 만든 사람은 시지프스입니다. 시지프스는 코린트를 건설했지만 물이 부족해 백성들이 고생을 하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시지프스는 아크로코린트 산꼭대기에다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강의 신 아소포스를 도왔습니다. 제우스신이 아소포스 신의 딸을 납치한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 장소를 일러바쳤던 것입니다. 

시지프스는 신들의 일에 감히 끼어든 주제넘은 인간이었습니다. 결국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영원히 바위를 밀어올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호머는 시지프스에 대해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코린트는 국제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 그러니 세계 각국의 상인들과 선원들이 몰려들어 늘 북적거렸습니다. 이런 곳엔 환락가가 함께 발달하기 마련입니다. 고대 코린트의 유적엔 매춘부의 숙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코린트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퇴폐와 향락이 넘쳐나는 당대 최대의 환락의 도시라는 오명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고대 코린트의 몰락은 강력한 지진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화장실입니다. 대리석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이 '일보는 곳'입니다. 그리고 앞에는 물을 흘려 보내는 작은 수로가 있습니다. 당시에 이미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고대에 물을 모아 두었던 저수장입니다.







기원전 500년경에 만들어진 음악당도 있습니다.







고대 코린트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이곳의 항구에서 실려나간 것은 올리브나 포도같은 농산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자들과 함께 그리스 문화가 함께 배에 실려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로마입니다. 로마는 고대 코린트의 가장 활발한 교역 상대였습니다. 이는 물자뿐 아니라 그리스의 문화가 가장 많이 전해진 곳이 로마란 얘기가 됩니다. 그리스 문화가 로마로 넘어가 유럽의 문명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고대 코린트는 결국 그 산파 역할을 한 항구도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