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은 오래전부터 중남미 여행을 꿈꾸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수천 년간 놀라운 문명을 이루었다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이 신비한 마야 이야기는 나를 늘 상상력의 세계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야 문명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치첸이사로의 여행은 그 어느곳보다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물론 이곳을 잠시 본다한들 그간 수많은 학자들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를 알아낼 도리는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나같은 뜨내기 여행자가 바랄 일이 전혀 아니지요. 하지만 나는 그간 세상살이에 무뎌진 '어릴 적의 상상력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보고 싶었습니다. 치첸이사에 가면 그렇게 될 것 같았습니다. 

버스는 3시간만에 칸쿤의 향략적인 현대문명에서 갑자기 마야의 신비한 고대문명으로 나를 옮겨다 주었습니다.  

 






치첸이사 안으로 들어가니 그간 사진으로만 숱하게 보아오던 91계단 피라미드와 전사의 신전이 드디어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오랫동안 그리던 그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91계단 피라미드를 처음 보았을 때 든 느낌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생각보다 작다는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이집트의 터무니없이 거대한 기자 피라미드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해 굉장히 정교하다는 것입니다. 피라미드를 쌓은 돌의 표면도 비교할 바 없이 매끄러웠고, 축성방식과 구조도 굉장히 세밀했습니다. 이건 반대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야 문명의 놀라운 점 중 하나로 늘 꼽히는 게 수학과 천문학의 수준입니다.

그들은 인도인들보다 300년이나 앞서 0이라는 숫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365일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표시한 게 바로 이 91계단 피라미드입니다. 91계단이 4면에 있으니 364이고, 여기에 맨위의 중앙 제단을 합해 365개, 즉 365일을 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계절과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계산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데 과학에는 워낙 젬병인지라 설명을 들었어도 잘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91계단 피라미드에는 두가지 신비한 현상이 있습니다.

91계단 피라미드는 쿠쿨칸 신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쿠쿨칸은 '깃털달린 뱀'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뱀을 모시는, 혹은 숭배하는 신전이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이게 기독교인들에겐 뭔가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뱀은 사악한 존재의 상징이니까요.

하지만 뱀은 기독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명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풍요와 다산과 지혜를 상징합니다. 아즈텍 문명의 케찰코아틀이나 앙코르와트의 나가 등이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집안의 능구렁이는 잡으면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의 오후 3시에는 계단의 측면에 짙은 그림자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깃털달린 구불구불한 뱀이 영락없이 신전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된다고 합니다. 춘분과 추분은 대개 농사의 적기이니 이 시기에 맞춰 뱀이 땅으로 내려오게 했다는 것은 이 신전이 틀림없이 풍작을 기원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뱀의 그림자이지 이건 정교한 수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하나는 계단의 정면에 서서 박수를 치면 굉장히 맑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새소리치럼 들리기도 하는데 어떤 연유로 이렇게 만든지는 모르겠습니다.

암튼 그래서 쿠쿨칸 신전앞에는 이 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박수를 꼭 쳐보곤 합니다.







우리는 쿠쿨칸 신전을 오르기에 앞서 치첸이사를 먼저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쿠쿨칸 신전과 가까운 '전사의 신전'으로 갔습니다.







전사의 신전 맨꼭대기에는 차크몰이 무심히 태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차크몰의 배에는 접시가 하나 놓여 있는데 인신공양의 제물에서 꺼낸 심장을 올려 놓던 곳입니다.







전사의 신전이라 하면 마야의 전사들을 기리던 기념당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전쟁에서 잡혀온 포로들의 심장을 바치던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영토나 식량확보, 혹은 종교전파가 주목적입니다. 하지만 마야의 전쟁은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부족국가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전쟁은 포로 확보가 최우선입니다. 태양의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산 심장을 제물로 바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스러운 샘'이라는 세노테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마야의 복잡한 역법으로 이루어진 달력과 가면 등의 기념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마야인들의 역법에 의하면 이 지구는 2012년 12월 22일에 멸망한다고 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에 관한 글은 다음을 읽어 보세요.









지금 보면 세노테는 그냥 너무나 평범한 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마야인들이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던 장소입니다.

이 샘에는 비의 신인 차크가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거나 흉년이 들면 치첸이사의 마야인들은 이 샘에 처녀와 아이들을 산채로 던져 신의 노여움을 풀려고 했습니다. 



 



사실 마야인들이 남긴 엄청난 규모의 유적에도 불구하고 마야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문자를 사용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이 지역을 관장하던 가톨릭 사제들이 이교도의 것이라 하여 마야의 문서와 책을 남김없이 모조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중 이 거대한 펠로타 경기장도 수수께끼중 수수께끼입니다.







바로 이곳이 펠로타 경기장입니다. 펠로타는 스페인어로 '공놀이'를 뜻합니다.







마야의 펠로타 경기는 아무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경기방식을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부조의 그림들로 추측컨대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발과 허리와 엉덩이를 이용해 림(Rim)이라는 골문에 공을 넣는 경기로 일종의 축구와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골대가 신기하게도 눕혀져 있는 게 아니라 저렇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공을 통과시켜야 할 골문이 굉장히 작고 높아서 정말 쉽지 않은 경기일 것 같습니다. 

나는 펠로타 경기장을 보면서 엉뚱한지 모르지만 해리포터의 퀴디치 경기가 연상되었습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공중에 설치된 골대에 공을 넣던 경기 말입니다. 난 혹시 조앤 롤링이 펠로타 경기장을 보고 퀴디치 경기의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야인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라 다니지는 않았겠지만요. 






 

펠로타 경기장의 부조를 보면 대략적인 펠로타 경기의 방식을 추측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펠로타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의식을 겸했다는 것입니다.







펠로타 경기장 옆으론 재규어 신전이 있습니다.







신전 벽에는 재규어 상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당시 유카탄의 밀림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물이 재규어였기 때문에 이를 상징물로 삼았을 것입니다.







역시 이곳에도 제물의 심장을 바치던 차크몰이 있습니다. 이곳에 놓인 심장을 재규어가 물어가면 신에게 정성이 전달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이 해골부조입니다. 마야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이 해골부조의 주인공들은 이 재규어 신전에 인신공양된 제물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펠로타 경기에 뛴 선수들이고, 그것도 패자가 아닌 승자팀의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패자팀이 제물이 되어야 할텐데 왜 승자팀에서 제물이 나왔을까요? 그건 신에게 바치는 심장은 가장 튼튼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피하기 위해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엔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 자체를 큰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의 인신공양은 지금 기준으로 보아선 야만적이고 어리석은 짓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대적인 잣대로 역사를 재단해선 그 어떤 문명이나 문화도 제대로 이해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이제 치첸이사의 하이라이트를 맞을 시간입니다.







바로 쿠쿨칸 신전의 91계단을 직접 오르는 것입니다. 경사도는 아찔할 만큼 굉장합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지성소에 오르기 직전이 그러하듯 이 또한 신에 대한 경배를 위해 '머리 꽂꽂이 들지 말고 네발로 기어라'라는 뜻일 것입니다.







치첸이사에 왔다면 이 신전 꼭대기는 현기증이 나더라도 꼭 올라가야 합니다. 전망이 정말 끝내줍니다. 오른쪽으로는 전사의 신전이 보입니다.







몇명의 전사가 제물로 저 신전의 제단에 바쳐졌을까요?







마야인들의 역법에 의하면 이 세상은 52년마다 한번씩 끝이 납니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52년째 되는 날에 피라미드를 하나 더 세우거나 아예 통째로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밀림속에는 수많은 마야 유적들이 남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유카탄 반도의 밀림속에는 마야의 유적들이 새로 발견되곤 합니다.







내려오는 길은 더 아찔합니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물을 구하기 쉬운 커다란 강가에 탄생하는 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마야는 이 상식마저 깨뜨려 버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도 구하기 어렵고, 농사도 짓기 힘들고, 독충들도 득시글 거리는 밀림속에 문명을 세우고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마야문명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기원전 3,000년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대문명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문명이 10세기 경까지 계속되었으니 멸망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또한 수수께끼입니다. 3-9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다가 갑자기 그냥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원주민을 초토화시킨 스페인 인들의 침략도 훨씬 후의 일이니 그게 원인도 아닙니다.

다만 도시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면서 숲을 황폐화시키고, 지력을 쇠퇴시켜 기근이 심해진게 멸망의 원인으로 의견이 모아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마야인들이 지녔던 수학과 과학 수준으로 보아 이 또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견해도 많습니다.

그래서 외계 문명설이라는 뻥튀기도 나오고 있지만 암튼 치첸이사 여행은 마야 문명을 더욱 더 신비함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