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시티 여행의 중심입니다. 광장 주변으로 대성당과 대통령궁, 주청사 등 주요 건물들이 몰려 있습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광장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도시를 만들 때 우선 광장부터 그려놓고,  그 주변에 교회와 주요 관공서를 배치하고, 그 뒤로 귀족의 집과 서민들의 집이 차례로 자리 잡는 식입니다.

멕시코 시티 역시 한치의 차이도 없이 유럽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바로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즈텍 문명의 최고 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을 허물고 그 위에 개발한 도시가 멕시코시티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궁이 보이고, 그 앞의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의 각종 국가적인 기념 행사가 펼쳐지는 단골 장소입니다.







사실 멕시코시티는 치안이 불안하기로 악명높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소칼로 광장 주변은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인데다 대통령궁이 근처에 있어서 경계가 삼엄하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입니다.







어딜가나 중심광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국기 하기식때는 멕시코 군인들이 도열하여 정중한 의식을 치루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상징인 대성당으로 가봅니다.







대성당은 아즈텍 문명의 대신전위에 세웠습니다. 기독교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지요.

중세의 기독교는 그야말로 광기에 가까웠습니다. 기독교 외의 모든 것은 무조건 말살시켜야 할 이교도의 것이었습니다. 아즈텍인들 역시 개종 아니면 죽음이었습니다. 사람한테도 그러니 하물며 아즈텍 문명의 심장인 대신전이 존중받을리가 없습니다.







당시 아즈텍을 정복했던 스페인 군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테노치티틀란은 당시 유럽 최고의 도시중 하나인 베네치아 공국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성당 내부입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즈텍 대신전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자신들의 신전을 세워야 했습니다. 상징성이 워낙 큰 곳이라 정복자로서의 위신을 세우고, 위엄을 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위대한 건축가들을 초빙하고, 자재를 수입하고, 막대한 돈을 투입한 덕에 암튼 지금의 대성당은 유럽의 유명 성당 못지않게 호화롭고 웅장합니다.












하지만 과달루페 성당이 그렇듯 멕시코시티의 대성당도 지반침하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접 보면 육안으로도 심각하게 기울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성당 내부는 늘 보강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자주 일어나는 지진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대성당 앞은 각종 야외공연이 펼쳐져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리고 대성당 옆으로는 많은 노점상들이 몰려 있어 자그마한 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정말 악랄했습니다. 개종을 안 한 남자들은 무조건 죽음이었고, 여자들은 겁탈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열했던 건 이들이 만든 신분제였습니다. 스페인인은 당연히 크리오요스라는 귀족이 되고, 스페인과의 혼혈로 태어난 메스티조가 두 번째 신분, 그외의 순수 인디오와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흑인들은 사회의 최하층으로 노예 취급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인디오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스페인인의 아기를 갖기를 원했고, 이로써 인디오들의 정체성은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멕시코도 순수 인디오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하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멕시코 뿐만 아니라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어난,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비극입니다.







아즈텍 문명의 존재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으로 인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그 중심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의 위치는 베일에 가려 있었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을 찾아 많은 학자들과 탐험가들이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그 위에 멕시코시티라는 거대 도시가 건설돼 알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렇게 유리 바닥 아래에는 전설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이 있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의 유적이 발견된 것도 전문가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1979년 한 인부가 수도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판게 우연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면 팔수록 엄청난 수의 유물이 나왔는데 연구해 보니 바로 아즈텍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이었습니다.








대성당 부근의 템플로 마요르입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즈텍 유적입니다. 이미 2천만 명이 모여사는 멕시코시티의 건물을 무너뜨리고 유적을 발굴할 수도 없는 일이니 멕시코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아즈텍인들은 14세기 중반 텍스코코 호수변에 정착, 점차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엄청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아즈텍의 멸망 이야기는 사실 좀 어이가 없지만 그들의 신앙으로 봐선 이해할 만도 합니다.







1519년 4월 21일,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즈가 11척의 배와 550명의 병사, 그리고 16필의 말을 끌고 멕시코에 상륙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즈텍의 달력에 그들이 숭배하는 케찰코아틀 신이 1519년에 동쪽에서 오기로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파란 눈에 흰 피부, 그들이 한번도 보지 못했던 커다란 배와 신기한 말. 이 모든 것은 코르테즈와 그 일행을 케찰코아틀 신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즈텍의 목테주마 왕은 이들을 신, 또는 신의 사자라고 여겨 왕궁으로 초대했고, 모든 아즈텍인들은 무릎을 꿇고 이들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코르테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테주마를 인질로 잡은 다음 아즈텍을 정복해 버렸습니다.

아즈텍인들의 이런 어이없는 오해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스페인 병력으로 멕시코를 정복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질병이었습니다. 아무런 면역력이 없었던 인디오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코르테즈가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멕시코내의 대략 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인디오들은 100년도 안돼 겨우 1백만 명 정도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그야말로 인디오들에게 스페인인들은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한 스페인은 곧바로 도시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호수를 통째를 메워 아즈텍의 흔적을 모두 지워 버렸습니다. 곧이어 그 위에 스페인의 도시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멕시코시티입니다.


그러니까 멕시코시티는 아즈텍 문명을 깔고 앉아 있는 셈입니다. 지금도 아무곳이나 파면 아즈텍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발굴이나 복원은 영영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즈텍의 흔적들을 뒤로 하고 대통령궁으로 향합니다.







광장에는 인디오들이 주술 의식을 벌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씁쓸하게도 이젠 그저 관광객들을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통령 궁이니만큼 경비도 제법 삼엄하고, 들어갈 때 검색 절차도 밟아야 합니다.







대성당이 아즈텍의 대신전 위에 만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대통령궁은 아즈텍의 왕궁 위에 세워졌습니다. 참, 철저하고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처음엔 스페인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고, 1927년부턴 대통령이 거주지와 집무실로 쓰고 있는데 지금도 중요한 연설은 이 광장의 발코니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대통령궁이라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4대 거장 중 한명으로 꼽히는 화가입니다. 1886년 출생한 리베라는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드러냈고, 국비유학생으로 파리에서 공부를 하며 피카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멕시코 내란이 끝나고 귀국하기 직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이곳에서 본 지오토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에 큰 감명을 받게 됩니다. 이게 멕시코로 돌아와 벽화를 그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물론 그의 벽화는 프레스코화의 은은한 기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는 멕시코 역사의 모든 것을 벽화로 표현해 냈습니다. 테오티우아칸과 톨텍 문명의 도시들과 혁명, 독립, 민중의 삶 등이 벽면에 도도히 펼쳐지는데 그 사실감과 생동감이 한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다른 곳을 포기하고 하루종일 이 그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벽화의 특성 상 옮겨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이곳 대통령궁이 아니면 리베라의 걸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몇해 전 서울에서 리베라의 전시회가 있었지만 그 때도 회화 작품 몇개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즈텍을 깔고 앉아 건설된 도시 멕시코시티. 하지마 내가 아는 한 멕시코인들은 아즈텍에 대해 동질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유카탄 반도의 마야 문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이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인구의 대부분이 스페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아즈텍인들이나 마야인들과 자신들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을 침략한 스페인에 대한 적대감이나 분노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남미를 여행할 때마다 이들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사실 좀 혼란스럽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면서 몇몇이 뿌린 스페인의 씨가 아메라카 대륙 전체의 인종과 문화와 사고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 좀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중남미에서 스페인 혼혈의 메스티조나 인디오들을 만날 때마다 뒷맛이 씁쓸해지는 게 바로 그런 이유때문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