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어촌마을 카다케스. 난 내가 좋아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흔적을 찾아 이곳까지 왔습니다.
난 그가 머물며 많은 그림을 그렸던 달리의 집을 찾기 위해 때마침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에게 위치를 물었습니다.
후안이라는 이름의 이 할아버지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위치뿐 아니라 달리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한때 달리를 잘 알고 지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엔 현지인이 달리를 사랑하는 방문객을 위해 호의를 베풀어 설명해주는 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나 상세해 혹시 “달리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니 한때 작업을 같이했던 절친한 친구였답니다.
이 뜻밖의 만남에 반가움 반, 놀라움 반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 태도가 워낙 열성적이었던지 작업실에 놀러 오면 달리의 사진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직업이 목수였던 후안 할아버지는 15살 때부터 취미생활로 사진촬영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무려 70년의 내공을 가진 할아버지의 사진들은 한장 한장 그와 달리가 함께 했던 인생의 깊이를 담은 듯 보였습니다.
달리의 작품이 미술관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 할아버지의 사진 속 달리는 기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들만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인솔 나가서 여행 사진을 찍을 때 마다 후안 할아버지의 벽에 걸려 있던 달리의 사진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요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굉장히 신중해졌습니다. 내가 찍고 있는 이 사진이 누군가에겐 액자로 만들어져 영원한 추억으로 보관될 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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