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이래 대부분의 중동 여행은 멈춰선 상태입니다. 시리아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꽤 오래된 얘기지만 시리아 여행 초기만 해도 반드시 물어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거기 안전한가?” 그럴 만도 했습니다. 시리아는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이미 서방에 의해 ‘악의 축’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첫 방문 땐 나도 약간 긴장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친절한 시리아인들은 금방 우리들의 경계심을 자연스럽게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절했던 사람들은 수도인 다마스커스와 수차로 유명한 하마에서 만난 시리아인들이었습니다.
우린 다마스커스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리의 남산 격인 카시운 산에 올랐는데 그곳엔 많은 시리아 인들이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커다란 솥단지를 갖고 있었는데 차를 끓여 마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스타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곳저곳의 여러 가족에게서 차를 함께 나누자는 러브콜을 받은 것입니다. 시리아인들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지라 서너명씩 팀을 나눴는데 배분받지 못한(?) 시리아 가족들은 무척 서운해 했습니다.
나는 눈빛이 간절했던 한 가족에게 홀로 갔는데 연신 고맙다는 인사에 오히려 내가 몸 둘 바를 모들 정도로 미안했습니다. 이 가족에겐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내가 그 가족에게 가자 친구들까지 한꺼번에 몰려 들었습니다. 개중엔 영어를 제법 구사하는 젊은이가 몇 있어서 소통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특히 한국의 발전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럴만도 했던 것이 시리아의 거리엔 한국 중고 자동차가 넘쳐나고 있었고, 한국의 핸드폰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다 채워 주려면 아마 그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서방에 의해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던 터라 외부 세계에 대해 상당히 목말라 있었던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내 질문 하나에 싸해지고 말았습니다. 내 질문은 이랬습니다.
“지금 시리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가?”
시리아에 오면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민감한 문제란 걸 충분히 알고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난 부자가 대를 이어 30년 이상동안 철권통치를 휘두르고 있는 시리아의 정치 상황에 대해 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예상대로 분위기가 확 굳어지더니 이들은 주변부터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가 한 젊은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우리 모두 불만이 많지만 시리아에선 그런 얘기를 하면 잡혀간다”고 말했습니다.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후 중동 전역으로 민주화 운동이 퍼져나갈 때 난 이게 곧바로 시리아에서도 폭발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였던 극도의 긴장감으로 짐작컨대 상당한 희생이 불가피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행히도 내 짐작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리아에선 이미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수차 근처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온갖 친절을 베풀고, 한국에 대해 유독 진한 친밀감을 보여줬던 하마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를 이은 시리아의 40년 독재는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지 짐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소망컨대 그 희생자 중에 최소한 다마스커스와 하마에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그 시리아 인들이 껴있지 않기만을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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