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 10. 28. 06:00

아주 오래전 호주로 출장을 간적이 있습니다. 당시만해도 홍콩에 이어 두 번째로 나가본 외국 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술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락스 거리였던 것으로로 기억합니다.  

첫 주문부터 분위기가 좀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남자 넷이서 맥주 8병을 시켰는데 주문받는 아가씨의 표정이 한국과는 달랐습니다. 약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8병임을 확인하고는 가져다 주긴 했습니다. 한창 목말랐던터라
4명이 8병 마시는데는 2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술이 떨어졌으니 다시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8병을 주문했습니다. 아가씨의 눈이 또 다시 커졌습니다. 






이번엔 "정말 8병이 맞냐"고 두번이나 확인하고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실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게 이 때였습니다. 술집 종업원들끼리 우리 자리를 흘끔흘끔 보면서 수군거리는게 눈에 띄었고, 술집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술고래인데다 눈치 또한 백단인 자들이라 대략 상황을 짐작하고나선 오히려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우린 끝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30분만에 다시 8병을 비우고 다시 같은 아가씨를 일부러 불러 또 8병을 시켰습니다. 
이 아가씨 이번엔 재확인도 안하고 주문만 받아가서 왠일인가 싶었습니다. 근데 술은 안가져오고 왠 덩치 좋은 아저씨 한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집의 매니저라고 자기 소개를 한 이 남자는 "정말 술을 그렇게 마셔도 괜찮으냐?"고 물어왔습니다. 

겨우 1인당 4병 마셨을 뿐인데 말입니다. 아? 맥주병 크기가 우리처럼 큰게 아닙니다. 유럽의 술집에서 대개 병맥주 팔 때 사용하는 작은 하이네켄이니 사실 4병이라야 그리 많은 것도 아닙니다. 

암튼 매니저까지 와서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8병이 우리 테이블에 왔습니다. 

우린 킬킬거리면서
"이건 얼마만에 마셔줄까?"
"이거 마시고 담번에 16병 시키면 얘네들 기절할까?"
웃고 떠들며 우린 아주 신났습니다. 

사실 주변을 흘끗거리며 보니 우리처럼 마시는 호주인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끽해야 한두병 가지고 몇시간째 떠들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우린 마치 작은 영웅이라도 된 양 다시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오버하지 않기로 한 사전약속대로 다시 점잖게 8병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 이번엔 놀라지도 않고 돌아갔는데 곧바로 매니저를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그쪽에서도 사전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매니저 오더니 "더 이상 술을 팔 수 없으니 나가달라"고 합니다. 

우린 짐짓 이해할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왜 그러느냐? 우리가 돈이 없어보이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매니저 그래도 끝까지 점잖게 "술을 충분히 마신듯 하니 더 이상 손님들에게 술을 팔지 않겠다"고만 합니다. 






사실 장난도 충분했고, 술을 더 마실 생각도 없고해서 우린 그냥 "오케이"하고는 팁까지 후하게 쳐서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자슥들! 그 정도 술마시는 것 가지고 쫀쫀하게 시리.."하면서 호기롭게 나오는데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릴 힐끔거리면서 '사고 안나서 다행이다'라는 표정입니다. 

이렇게해서 우린 호주 술집에서 유쾌하게(?) 쫓겨났습니다.

처음엔 낯선 동양인들이라 경계심이 작동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만 그 후 유럽의 많은 술집에서도 우리처럼 술을 여러병 한꺼번에 시켜놓고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자가 많은 독일의 맥주집에서도, 영국의 펍에서도 가만보면 기껏해야 맥주 한두병이나 한 두잔 시켜놓고 서너시간씩 줄창 떠들기만 하는게 이네들의 음주문화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낯선 동양인들이 30분 간격으로 연거푸 8병씩 주문해서 마셔대니 놀랄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처럼 술을 퍼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주를 시켜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값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데 유럽의 술집은 어떻게 운영이 되는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안설 것 같은데...

숱하게 유럽여행을 해봤고, 숱하게 유럽 술집에서 술도 마셔봤지만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