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2. 3. 12. 06:00




푸저흑(普者黑)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구북의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영미씨, 나는 천천히 갈테니까 먼저 가요. 괜찮으니까 먼저 올라가요." "아닙니다. 여기가 제 자리인 걸요."

인솔자는 앞으로 나서지도,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손님들을 시선에 두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과연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얼마 전 중국의 나평·원양으로 첫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나평의 3천만 평에 달하는 유채꽃밭은 1년 중 딱 한 달, 인간의 땀과 생존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원양의 다락밭 역시 모심기 전 딱 몇 달 동안만 그 절경 감상이 허용됩니다. 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적게는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합니다.

첫 출장에서 이런 소중한 기회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하는 만큼 그 부담감과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인솔 중 실수하지는 않을지, 회사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을 손님들께 행복한 여행으로 남게 할 수 있을지 걱정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오지여행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완벽한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날들을 애썼건만 생각지 못한 변수들은 계속 발생했습니다.






곤명에서 원양으로 향하던 중 아무 안내도 없이 도로를 막아 놓는 바람에 잠시 아찔한 역주행(중국에선 흔한 일인 듯 모든 차량이 아무렇지 않게 반대편 차선을 달렸다)을 했고, 식당에선 우리가 예약한 음식이 엉뚱한 테이블로 가는 바람에 한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구북의 호텔에선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오히려 약간의 공포심마저 느껴야했습니다.

게다가 여행 내내 날씨마저 좋지 못해 비오거나 흐리기 일쑤였고, 예년보다 꽤 춥기까지 했습니다.


이럴수록 좋은 여행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함께 하신 분들이 모두 진정한 여행매니아들이었습니다. 여행 중 발생한 돌발 상황은 물론 나의 부족함마저 넓게 포용하며 그것조차 여행의 즐거움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이분들이 진정한 여행자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작은 일정의 변화와 변수들에 갈대처럼 흔들리며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습니다.


에티오피아 2년을 포함해 그간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 왔다고 은근히 자부했건만 인솔자로서는 물론 여행자로서도 내 자리는 한참 멀었다는 반성을 하게 한 여행이었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 단 한번 만나는 소중한 인연을 말합니다. 첫 출장에서 만난 분들을 평생 인연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여행 마지막 날 호텔방에서 해주신 격려 말씀들을 항상 기억하며 인솔자로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영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