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2. 5. 29. 06:00

 


‘오늘은 자그마한 농장에 있는 민박집에서 숙박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남단, 약간의 술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반응은 담담했습니다. 모두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라고 믿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투숙할 시간이 다가오자 한분씩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오셨습니다. 방에 화장실은 있는지, 혹시 한방에서 다 같이 자는 것은 아닌지…

 

입구를 통과하고서도 15분 정도를 더 달려서야 농장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지평선까지 탁 트인 광활한 대지, 그 누런 풀밭에 지어진 농장건물은 마치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와 두 아들, 그리고 식당 아줌마 한 분 뿐이었지만 그 어느 특급 호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투숙객이 아니라 농장 저택에 초대받아온 귀족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엔틱 가구로 치장된 거실과 맛깔스런 식탁메뉴도 감동적이지만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습니다.

파란 하늘을 닮은 옥빛 호수 너머로 내일 오르게 될 피츠로이산의 그로데스크한 몸집이 병풍처럼 서있는 곳, 석양 무렵의 농장은 시(詩)적인 감흥에 흠뻑 젖은 채 무거운 침묵에 빠져 있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장작이 타오르는 거실에 앉아 환담을 나누면서 하룻밤만 묵고 가기 아깝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이 농장 민박집은 총 18박의 일정 중 단연 최고의 숙소였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여행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찾아들어간 곳은 산 후안이라는 인구 2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의 호텔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을 호텔이라 부르기 민망해 여인숙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워낙 오지인지라 그저 몸을 뉘일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숙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또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시설은 다소 열악하지만 이 호텔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의 정성 때문이었습니다. 쓸쓸할 수밖에 없는 이 오지에 찾아온 동양의 낯선 객들을 그들은 마치 가족처럼 맞아주었습니다.

사실 남미 안데스여행의 호텔들을 예약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곳이 위의 두 군데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던 숙소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겨졌습니다. 쉐라톤 호텔과 고급 리조트, 아타카마 사막의 80만 원짜리 방들을 제치고 말입니다.

좋은 호텔과 나쁜 호텔의 차이는 시설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각형의 현대적인 고급호텔은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호텔은 단지 잠만 자는 곳이 아닙니다. 그 지역의 색깔을 가장 잘 담아내는 호텔이 좋은 호텔입니다. 호텔 숙박도 문화 답사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구시가지의 삐걱거리는 엔틱 호텔, 샤또 호텔, 수도원 숙소, 몽골의 게르, 사막에서의 텐트, 스코틀랜드의 고성 호텔 등이 좋은 숙소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때로 편안함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숙소의 가치는 아는 사람만 알아줍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