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2. 6. 21. 06:00

 

 

스위스와 남프랑스 일대를 도는 건축과 미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렌조 피아노, 장 누벨, 헤르초크 & 드 뫼롱, 마리오 보타, 안도 타다오 등 거장들의 현대 건축물들을 보았고 파울 클레, 보나르, 르누아르, 피카소, 페르낭 레제, 샤갈, 마티스 등 수많은 대가들의 그림을 접했습니다.

사실 현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한다면 현대건축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무식함이 기대치를 낮춘 것입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들, 그리고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그동안 감동으로 보아 왔던 건축물들입니다. 유럽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건축물들을 보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좋은 그림들을 만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여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답사에서 만난 현대건축과 현대미술들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현대 최고의 건축물들을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무지함에 적잖이 당혹감이 들었습니다. 통화와 문자 기능만 있는 휴대폰을 사용하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의 당혹감이랄까요?(난 아직도 스마트폰의 기능들을 정말 이해 못한다)

확실히 현대에 가까울수록 건축이든 미술이든 뭔가가 복잡해지고 더 난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답사가 거듭될수록 가슴 한 켠에 묵직한 화두 하나가 자리 잡아 답답증이 커져만 갔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왜 현대를 더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그렇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고 중요한 발견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빛’이었습니다. 특히 빛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빛의 소리는 롱샹성당에서 들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 속의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압도했습니다. 그 무거운 침묵의 공간에 불규칙한 크기의 창을 통해 수 십 갈래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영원한 진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빛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도 빛밖에 없었습니다.

성당 안은 오직 빛과 그림자만 존재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림자일 뿐이고 허상일 뿐이었습니다. 롱샹성당의 빛은 그렇게 소리 없는 언어로 진리를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빛을 보라고, 그림자와 허상에 현혹되지 말라고.

11세기 시토회 수도사들이 만든 르 토로네 수도원에서도 빛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에는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하게 절제된 텅 빈 공간으로 꼭 필요한 만큼의 간결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묘하게도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워 충만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수도사들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곳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어찌 가슴 속 깊은 회한과 미련이 없겠습니까? 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수도사들은 가슴속 깊이 처절한 울음을 토하기도 하고 때로는 환희의 미소를 짓기도 했을 것입니다.

침묵 속에 나누는 수도사들과 빛의 교감, 이 얼마나 장엄한 대화인가? 지금은 수도사는 없지만 차가운 질감의 돌바닥과 빛이 숙연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여행 말미에 방스의 마티스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생의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는 마티스의 성당은 단출하고 아담했습니다. 마티스는 이곳에 빛을 끌어와 모든 것을 표현해 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장중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고 성당 전체를 겸허한 찬양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대건 중세건 현대건 모든 건축은 공간과의 싸움이고 빛과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이번 여행 내내 건축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현대적 거장들이 만든 건축물의 절묘한 채광효과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하나같이 빛을 절묘하게 이용한 채광이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롱샹성당을 만든 르 코르뷔지에나 시토회 수도사들, 그리고 마티스는 빛과 싸우려 하지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겸허하게 빛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빛은 앞으로의 여행에서 내가 찾는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산다는 것 또한 빛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