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0. 10. 27. 07:00


지난 여름의 발틱 3국 여행 중 또 하나의 공화국을 찾아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우스피스 공화국입니다. 총 인구는 80명에 불과하지만 국회도 있고 대통령도 있습니다. 게다가 10명의 군대조직도 갖추고 있습니다.
 

총 41개조에 달하는 우스피스 공화국의 헌법을 살펴보면 이 공화국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권리가 있으며 실수할 권리도 있고 행복할 권리와 함께 불행할 권리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권리, 아무 것도 알지 않을 권리, 오해해도 좋을 권리도 있습니다.


물론 이 우스피스 공화국이 완전독립 상태는 아닙니다. 그들은 매년 4월 1일 만우절하루만 독립합니다. 

리투아니아의 구시가지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만나게 되는 우스피스 마을은 1940년대 이전만 해도 유태인들의 거주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독일 나찌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학살과 강제 이주 정책은 마을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텅 비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덩그라니 빈집만 남게 된 이 마을은 술주정뱅이 부랑아들과 매춘부, 노숙자들이 찾아들어 전형적인 빈민가로 전락했으며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는 끔직한 우범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대부터 이 마을에 예술인들이 하나 둘 이주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지배하에 천대받던 이름 없는 화가들과 악사들, 울분을 삼키고 있던 문학인들이 그들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오물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우중충한 판자집 벽은 예쁜 벽화로 장식되어 갔고,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의 악다구니 소리 대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우스피스 마을은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창작공간으로 급격히 변모되어 갔고, 급기야 1997년 4월 1일에 헌법을 공포하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만우절 행사의 일환으로 예술인들이 꾸민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우스피스 마을 예술인들의 이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독립선언은 세간의 화제가 되어 지금은 매해 4월 1일 시행되는 독
립선언 축제로 승화돼 많은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마을이 있습니다. 통영의 동피랑마을입니다. 통영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이 마을은 3년 전에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철거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자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 행사에는 전국의 미술대학 재학생 등 18개 팀이 호응하여 달동네의 허름한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로써 고단한 삶의 터전이 동화와 같은 마을로 변모되었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철거계획이 철회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작년에 동피랑 마을을 방문했을 때 느낀 감동은 이번 우스피스 마을에서도 똑같이 재연되었습니다. 화가들이 빈민가의 담벽에 그린 것은 단순한 벽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린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우스피스 마을 입구의 카페에 앉았습니다. 손녀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한 할머니의 평온한 미소를 보면서 세상 구석 어두운 모든 곳이 저 우스피스 마을처럼 아름답게 색칠되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