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0. 11. 28. 08:32

오랜만에 인도여행을 왔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세기도 힘들만큼 수없이 드나든 인도여행이지만 언제 와도 인도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흔히 인도를 표현하기를 '극단의 공존'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도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남긴 글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인도인 모두가 철학자인 양 신비주의적인 시각으로 쓴 글이 있는가 하면 지긋지긋한 인도인들의 극성에 혀를 내두르는 글들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도 예찬론자이거나 인도 혐오론자,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자이푸르에서 우연히 결혼식 행렬을 만났습니다. 쉐라톤 호텔에서 예식을 치를 정도이니 아마도 꽤나 잘사는 부유층의 결혼식이었을 것입니다. 인도의 결혼식은 주로 밤에 치러지는데 정말이지 요란하고 시끌벅적합니다. 20여명의 밴드와 확성기 차량을 동원하여 풍악을 울리면서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지고 수십 개의 화려한 전등이 행렬의 좌우를 호위합니다. 마침 호텔로 진입하는 행렬을 만난 우리들은 너무나 흥겨운 음악과 춤사위에 결혼식 행렬로 뛰어들어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이를 본 신부측 어른들이 정식으로 결혼식에 참여해달라고 초청을 해주었고, 얼떨결에 호텔의 결혼식장 겸 피로연장에 초대되어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결혼식은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일단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의 종류를 세어보니 종잡아 80종류 이상의 요리가 차려져 있었고, 초청가수와 악단들, 현란한 실내장식 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또한 1000여 명의 하객들 옷차림 또한 품위와 기품이 넘쳐 우리들이 초라해질 지경이었습니다. 현지인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이 정도 결혼식이라면 최소한 2억 이상의 경비가 소요되고, 이를 모두 신부측에서 부담한다고 합니다. 2억원을 인도 현지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결혼식 피로연 비용으로만 5억원 이상을 지출하는 셈입니다. 왕족이나 톱스타의 결혼이 아닌 일반인들의 결혼식으로 이보다 화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텔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돌변합니다.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요, 아수라장의 세상입니다. 너무나 치열한 그들의 삶은 가슴을 아리게 만듭니다. 이미 수많은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테니 굳이 여기에서 인도의 거지들이나 빈민들, 열악한 환경 등등에 대하여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상상 이상의 혼란스러운 세상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인종이 다른 것은 아닐텐데, 결혼식장에서 만난 부유층들과 길거리의 사람들은 피부색과 몸집, 눈빛부터가 다릅니다. 잎이 무성한 보리수나무와 말라비틀어진 장작개비 정도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인도여행 내내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거리에 즐비한 똥을 피해가면서 소음과 매연 사이를 오가다가도 일단 호텔에만 들어오면 잘 정돈된 정원을 바라보며 극진한 대접을 받는 우아한 귀족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겨우 담장 하나 차이인데 호텔과 바깥세상은 지옥과 천국의 경계선이었습니다.


바라나시에서는 이틀 밤 연속 갠지즈 강가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거지들의 사열을 받으며 가트에 이르러서는 화장터에 앉아 '꺼지지 않는 불꽃'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꺼지지 않은 화장터의 장작불입니다.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지 않는 이상 이곳 화장터의 장작불 또한 영원히 타오를 것입니다.

그리곤 힌두의식인 아르티 푸자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매일 저녁, 갠지즈 강가 가트에서 진행되는 힌두의식인 아르티 푸자 의식은 하루 종일 정말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도피처이자 위안처인 것 같습니다. 강가에 군집한 인도인들은 줄에 매달린 종을 난타하며 북을 두드리고 힌두교 사제의 동작에 따라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의식에 빠져갔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신들을 불러들이고 신들의 따사로운 보살핌 속에 하루를 마감하는 듯 했습니다. 그야말로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 바로 옆 화장터에서 불살라진 영혼과 산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장엄한 의식이었습니다. 이런 의식이라도 없으면 처절한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해줄 방법이 없어보였습니다. 이런 의식에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의 유일한 도피처마저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의식을 말없이 지켜보던 우리 일행들 중 몇 분이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푸자의식은 이방인의 가슴에 쌓여있던 응어리도 정화시켜 씻어내는 힘이 있나봅니다.


만일 내게 큰돈이 있어서 바라나시의 저 빈민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는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지간히 큰 돈이 아니라면 저들에게 돌아갈 것은 빵 몇 조각 밖에 안될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원이라도 하나 더 지어주어 그곳에서 기도하며 힘든 하루를 잊으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바라나시의 인도인들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힘은 종교입니다.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힌두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의미였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