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0. 12. 6. 07:00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처음 캄보디아에 발을 디뎠을 때 무척이나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대한 이미지는 '앙코르와트'보다 '킬링필드'로 대변되는 대학살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전 인구의 30% 이상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기에 심성이 당연히 공격적이고 배타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인들의 수줍은 미소가 여행 첫날부터 나를 완전 무장해제 시키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미소, 눈만 마주치면 수줍게 웃으며 숨어버리는 아이들, 심지어는 총을 한번 만져보아도 되겠냐는 물음에 순순히 총을 건네 주던 수상관저 보초병의 미소는 오히려 나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티베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 의해 강제 합병 당한 후 억압과 탄압의 시간 속에서 가슴 가득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을 줄 알았던 티베트인들 역시도 우리들에게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불쑥 찾아들어간 이방인들에게 기꺼이 부엌살림이나 침실까지 낱낱이 보여주는 그들에게도 순박한 미소는 마치 습관처럼 입 끝에 달려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에서도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500년의 역사 내내 주변국들의 식민지로 살아야만 했던 코카서스 사람들, 코카서스 주변국들 중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침략자이자 억압자일 뿐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방인에게 잔뜩 경계심을 가질 만도 하건만 여행 중 만난 그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다정다감하고 호의적이었습니다. 자신이 굶을지언정 방문객을 굶기지는 않는다는 그들 또한 어디에서건 환한 미소로 우리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외국의 침입으로 학살을 당하고 끔직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지역의 사람들은 의외로 순박하고 환한 미소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고통만을 안겨주었던 외부인에게 적개심 대신 보내는 그들의 미소는 어떤 의미일까요? 아무래도 그 미소는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미소로써 상대방에게 적의가 없음을 나타내고 혹시나 있게 될 봉변을 면해보자는 자기보호 본능 말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보니 맥없이 당하고만 살
아왔던 사람들의 미소가 너무나 슬프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은 바보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인 남미의 인디오들이나 인도의 릭샤왈라들 또한 슬픈 미소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내 생각이 비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이는 너무나 서글픈 일입니다. 다음 여행지에서 또 슬픈 미소를 만나게 되면 보다 더 따듯한 미소로 화답해 주리라 다짐해 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