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동유럽 여행에서 들렀던 체코의 작은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 이 마을이 간직한 독특한 중세 분위기는 나에게 그 어떤 곳보다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마을을 S자로 휘감아 도는 블타바강과 그 강가에 빼곡히 자리 잡은 수백 년 된 집들, 그리고 언덕위에 그림처럼 세워져 있는 성채가 어우러져 과연 체스키 크룸로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라는 평가가 괜한 게 아님을 금방 알게 해주었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둘러보며 문뜩 떠오른 곳이 경주의 양동마을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마을입니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이 반영된 전통 건축 양식이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이란 이름으로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하지만 등재 소식에 큰 기대를 안고 지난해 가을에 방문한 양동마을은 나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우선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이정표가 부실해 원하는 곳을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것은 물론 막상 표지판을 따라 간신히 찾아가면 출입이 통제되기 일쑤였습니다. 또 곳곳에 웬 잡스러운 간판들과 플래카드가 많은지 이날 양동마을에서 받은 인상은 ‘너저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대부분 관광객들이 급격히 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수선한 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세계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양동마을에서 실망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완벽하다고 할 만큼 잘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는 먼 체코 땅의 체스키 크룸로프를 보고 있자니 경주 양동마을에서의 실망감이 새삼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등재 1년 만에 세계문화유산 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니 더 착잡해집니다. 양동마을 바로 앞에 건설될 복선전철 교각 때문입니다.
양동마을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사유중 하나가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입니다. 교각 건설로 이 선정 사유가 사라지면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걱정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에 교각을 건설하자 유네스코는 단호하게 즉각 선정을 취소해버렸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노력해야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양동마을도 각고의 노력 끝에 선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낸 관광자원을, 그것도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관리부실과 무관심으로 우리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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