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2. 5. 2. 06:00


‘소주처럼 맑고, 맥주거품처럼 풍부하고, 막걸리처럼 순수한 사랑’을 찾게 되면 결혼을 하겠다는 여고 때 멋있으셨던 윤리선생님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 날 때가 있습니다.

윤리선생님은 소주처럼 맑은 눈동자로 교정에 벚꽃 잎이 봄비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면 시를 맥주거품처럼 풍부한 감성으로 읊어주시며 입시에 찌든 우리들 마음에 봄비를 내리게 하셨던 순수한 분으로 이미 전교의 여학생들에게 가상의 품절남이 되었던 남자선생님이시었습니다.

나 역시도 수백 명의 경쟁자속에 윤리선생님을 흠모했던 터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3종의 술을 공식적으로 다 마셔볼 수 있는 대학생이 될 것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독한 소주나 텁텁한 막걸리보단 난 풍성한 거품과 황금빛 노란색의 그 조화가 너무나 멋진 맥주가 좋았습니다. 맑고 순수한 사랑보다 나를 이해해줄 풍부하고 풍성한 사랑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때도 새학기에는 새 책을 사는 대신 책을 제본하고 남은 돈으로 병맥주를 시켜 마실 만큼 나는 늘 맥주가 좋았습니다.

여행사에 입사 하면서, 나는 또 다른 신세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맥주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맥주를 음미하게 된 것입니다.

첫 출장지인 일본을 다녀오고 나선 곧바로 일본맥주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아사히 맥주는 나의 첫 대형단체와의 출장을 문제없이 마무리한 안도감의 맛으로 간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나에겐 출장의 즐거움 중 하나가 그 나라의 맥주를 시음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타이거는 이 나라의 인상처럼 깍쟁이 같았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필리핀의 산미구엘은 행복한 그리움으로, 백두산 천지 아래서 마셨던 중국 지방 맥주는 천지를 꼭 보아야 한다는 간절한 맛으로 기억됩니다. 남아공의 국민 맥주 캐슬은 모든 짐이 이례적으로 잘 도착했다는 행운의 맛으로 추억됩니다.




여러 맥주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입니다. 별이라는 의미의 이름도 예쁜 맥주 스텔라는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서 처음 맛봤습니다. 세계 5위의 판매량답게 맛도 뛰어났지만 나에게는 두 달을 머물렀던 웰링턴에서의 추억이 가득한 맥주입니다. 그 이후 벨기에 맥주에 빠져 들어 한동안 호가든, 벡스, 레페 등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객관적 맛으로만 따지자면, 사실 체코맥주 필스너우르겔이지 싶습니다. 그 깊고도 육중한 맛은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습니다.


나에게 맥주는 지난 추억을 상실감이 아닌 그리움으로 만들어주는 컨버터와 같은 존재입니다. 마치 이 세상 길목길목마다 지키고 있는 가로등처럼 나에게 맥주는 지난 여행을 환한 추억으로 밝혀줍니다.


그리고 여행을 앞둘 때마다 타는 듯한 지난 그리움을 맥주 한잔으로 식히며, 다시 새로운 맛의 추억을 찾을 생각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다음 출장지인 시칠리아에서 마시게 될 맥주는 어떤 맛으로 기억되게 될까요...?

                                                                                                                           [성순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