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2. 5. 23. 06:00


"그대는 우리가 만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어. 이것을 잊지 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 들이지."

 

몇 해 전 인도 여행을 앞두고 읽은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갈무리 한 구절입니다. 세계 곳곳의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을 갖고 보니 이 구절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난달 중국 운남성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중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모여 산다는 바로 그 운남입니다. 인솔자의 입장이었기에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할 여유를 가질 순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 막바지 여강에서 대리로 이동하는 도중 국도로 진입하는 좁은 길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이유인즉슨 여강의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한 나시족 주민이 한족의 차에 치여 죽자 동네사람들이 모두 들고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을 죽였으니 사고를 낸 당사자도 똑같이 사형당해야 한다며 피의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고 현장의 앞뒤를 책걸상을 동원해 막아 놓았습니다.

 

다행히 공안이 출동하면서 얼마 안가 길이 다시 트였지만 가이드 말로는 이런 큰 사건뿐 아니라 소소한 문제에도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자신의 종족을 감싼다고 합니다.

 

바로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사실 좀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방식이 무조건 ‘좋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론 종족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이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주위를 돌아보며, 어려움에 빠진 이웃에 대해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의 서로에 대한 애정도 없이 거대한 중국 속에서 어찌 작은 소수부족으로 살아갈 수 있으랴 생각되었습니다. 

 

차디찬 골방에서 숨을 거두고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 며칠씩 방치된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놀라운 뉴스거리도 아닌 매몰찬 사회에 사는 내게, 그리고 그 삶에 익숙해져 타인의 일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비정한 나에게, 이번 여행에서 만난 나시족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좀 더 따뜻한 인간 권가을을 만들기 위해 전생에 만나기로 약속되었던 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