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해외여행은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한 유럽 패키지였다. 그 때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시간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리 연구해 간 사진 포즈 하나 취해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을 맞닥뜨려도 그걸 제대로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교환학생을 계기로 2012년, 유럽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굶었던 아이처럼 물릴 때까지 미술관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동경하던 여행도 해 보았다. 엽서 크기의 스케치북을 들고 각국 미술관에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여행이었다. 슬프게도 내게 화가의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여러 번 그리고 지우며 대상을 오래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꼼꼼히 뜯어보면 그냥 감상할 때보다 훨씬 세부적으로 대상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기억할 때 나는 나무에 금빛 빗살로 새겨진 일출 햇살과 비너스의 (의외의)복근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를 떠올리면 그녀의 게슴츠레한 눈과 강인한 턱이 생각난다.
그런 기억이 있는 만큼, 마음 같아서는 여행 중 손님들과 미술관을 가게 되면 한 나절이고 하루고 무한정 시간을 드리고 싶다. 욕심 같아서는 현지의 미술대학 학생들처럼 다함께 스케치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만의 여행이 아닌 이상, 그리고 정해진 일정과 예약이 있는 이상에는 무한정 한 곳에 머물 수는 없다. 사람마다 취향도 달라 누구한테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 누구한테는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 여행팀이 부쩍 늘어나는 여름, 아마도 테마세이의 인솔자들은 손님들의 최대 만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유명 미술관 곳곳에서 시간 배분을 놓고 끙끙대게 될 것이다. [구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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