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5. 18. 06:30

 

 

. 오늘 일출은 못 볼 것 같습니다.” 도이수 풍경구의 다랑논을 보러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짙은 안개에 10m 앞도 채 안 보인다. 다행히 어제 본 노호구 풍경구의 일몰이 가히 환상적이었던지라 우리 일행들 사이에는 아쉽지만 괜찮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돌았다.

 

미련을 뒤로하고 쉬기 위해 호텔로 돌아오니 뜻밖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호텔 앞 하니족 마을에 장이 열린 것이다. 원래는 새벽부터 일어난 우리에게 달콤한 휴식시간이 될 예정이었지만 어떻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을까! 내친김에 자유 시간을 더 길게 드리면서 빠르게 해산!’을 외치고는 나 또한 신나는 걸음으로 시장을 향했다.

 

 

 

 

 

길거리에는 파란색 두건을 쓰고 화려한 전통복장을 입은 하니족들이 가득했는데 거기에 짙은 안개까지 마을을 휘감고 있으니 마치 꿈속을 걷는 듯 했다. 게다가 시장의 풍경이 우리나라의 1950~60년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색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 바느질로 고장 난 가방 지퍼를 한 땀 한 땀 고쳐주는 사람들, 갓 잘린 듯 김이 나는 돼지 머리, 방금 거래를 마치고 살아있는 닭을 들고 가는 사람들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모습들 가운데 압권은 좌판에 틀니를 진열하고 그 자리에서 끼워주는 간이 치과(?)였다. 생전 처음 보는 틀니 교체식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하니족 치과 선생님께 혼날 정도로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이 중에는 대포 같은 카메라로 장에 나온 하니족들을 사진에 담는 관광객들도 섞여 있었다. 원래부터가 원양은 세계 최대의 다랑논으로 유명해 전문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이 짙은 안개 속에서 그들이 뭘 할 수 있을까. 다랑논 대신 마침 열린 이색적인 장과 하니족이 그들에겐 탐스러운 피사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카메라 앞에 놓인 하니족은 너무나 무표정했다. 자신들을 마구 찍어대는 것에 무척 불쾌한 기색이었다. 얼굴이 어찌나 딱딱하게 굳었던지 눈치껏 사진을 찍던 나도 어색해졌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이 뒤섞인 채 무거운 마음으로 시장을 돌던 중 하니족의 파란색 두건을 파는 할머니가 보였다. 얼떨결에 난 그 두건을 샀고, 할머니가 직접 내 머리에 둘러주었다.

 

 

 

 

그런데 두건을 두르자 모든 게 달라졌다. 일단 나부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 마을 사람이 된 마냥 마음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게다가 딱 봐도 이방인이 파란 두건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는지 이전에는 내가 하니족을 구경했다면 이제는 하니족이 나를 구경하는 상황이 되었다.

 

길 가는 하니족 마다 눈이 마주쳤고, 그리고 드디어 그때 보았다. 하니족의 눈부신 미소를! 말 거는 것조차 무서웠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그 엄청나고도 행복한 변화에 내가 쓰고 있는 두건이 마치 마법의 두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시간 후 호텔로 돌아오니 이미 마법의 두건을 색색별로 두른 일행들이 보였다. 그리고 서로의 모습에 크게 웃으며 각자가 겪은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아마 손님들도 이날 하니족의 진정한 미소를 발견하지 않으셨을까. [방수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