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20. 2. 6. 06:35

 

그간의 여행지를 돌이켜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2014년 유럽 배낭여행 때 방문했던 이탈리아의 베니스다. 수상도시라는 독특한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아쿠아 알타(Acqua Alta 홍수)를 경험한 그날의 생생한 기억 때문이다.

 

하루 종일 베니스 시내와 근교 섬 여행을 마치고, 밤 10시쯤 되었을까. 이미 호텔에 들어와 잘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산마르코 광장의 야경이 보고 싶어 나 홀로 다시 호텔 문을 나섰다. 막상 수상버스에 오르니 낮에 보았던 푸른 하늘과 바다는 온데간데없이 온통 새까맣기만 했다. 나올 때의 용기는 사라지고 문득 겁이 났다.

 

 

 

그리고 광장에 도착해 발을 내딛는 순간, 자그마치 한 뼘이 넘게 물이 차오른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꼬마들마저 꺄르르 웃으며 물에서 놀고 있었다.

 

이 낯선 광경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마음속에 용기를 장착하고 샌들을 벗어 들었다. 발목까지 찬 물을 첨벙첨벙 밟아가며 광장에 들어섰다. 내가 찾던 도시 불빛들은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악사들의 라이브 연주를 배경삼아 물에 반사되는 산마르코 광장의 낭만적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감동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때의 순간을 잊을 수 없어 주변에 베니스를 추천하곤 했다. 그냥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이후 내 지인 중에선 아무도 아쿠아 알타를 겪지 못했으니 내 기억속의 낭만 도시 베니스를 공감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최근 베니스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쿠아 알타’가 낭만이 아니라 도시 생존의 문제가 걸린 재난이 되었다는 뉴스다. 이대로 베니스의 지반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정말 나의 낭만 도시가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여행지에서 맞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사실상 그 순간들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비록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어도 예기치 못한 아름다운 순간을 마음속에 담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최유라]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