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보산은 성경과 떼어 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120세의 나이로 숨진 장소가 느보산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얘기를 듣고 얼마나 비옥하고 아름다우면 이런 표현을 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 들어 이미 가나안 땅은 나무 한포기 자라기 쉽지 않은 척박한 땅이란걸 알고 있었지만 느보산에 오르면 혹 달리 보이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올랐습니다.









해발 835m 높이의 느보산 정상엔 모세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마치 그날의 모세가 행한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금방이라도 닿을 듯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어서 왠지 모를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기념교회는 모세의 무덤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세 기념교회는 내외관이 모두 소박해서 오히려 훨씬 더 경건해 보였습니다.













모세 기념교회의 지하에선 많은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이 발굴되었습니다.





느보산의 전망대엔 모세가 가지고 다녔다는 놋뱀 장대 구리조각품이 상징물처럼 서 있습니다.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입니다.
거대한 뱀을 형상화한 모세의 장대는 사실 좀 의외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와 신화가 뱀은 다산과 지혜, 그리고 풍요를 뜻하지만 기독교에서 만큼은 뱀은 악마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암튼 놋뱀 조각품 뒤로 모세가 그토록 꿈꾸었던, 그러나 '갈 수 없는 나라'였던 가나안 땅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눈에는 그저 황막한 불모지뿐이었습니다. 아마 마음의 눈으로 보거나 혹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눈으로 바라봐야 그 매혹적인 땅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눈에는 저 땅을 두고 오랜 세월 펼쳐져 왔고, 지금 현재도 진행형인 피비린내 나는 종교갈등과 인종갈등의 현장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황토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만 생각되었습니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나같은 범인의 눈에도 저 곳이 젖과 꿀이 흐르고 모두가 아름답게 사는 평화로운 땅으로 보이게 될까요?





느보산을 내려와 인근의 마을로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기념품 가게에 난데없이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시가 걸려 있었습니다. 누가 써준 것일까요?






'나는 한국을 좋아합니다'라고 좀 더 노골적인(?) 러브콜을 내걸은 기념품 가게도 있습니다. 아마 성지순례길에 오른 한국 단체들을 향한 마케팅이겠지만 암튼 애교가 있습니다. 이런 한글 문구를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이 성지순례 여행이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