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은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 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거대한 도시가 홀연히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자존심 강한 제노비아 여왕의 드높은 콧대가 하루 아침 사이에 팔미라를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유럽과 지중해 국가를 여행하다보면 도처에서 로마유적과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은 전쟁과 지진, 그리고 세월의 무게로 인해 기둥과 벽체들만 남아 있습니다. 팔미라는 로마를 배반한 속주에 대한 본보기로 더욱 철저하게 파괴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미라는 지금까지 본 수많은 로마 유적중 단연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우아했습니다. 


다마스커스에서 팔미라가는 길입니다. 사진처럼 온통 황량한 사막뿐입니다. 팔미라는 모래외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지점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팔미라 가는 길엔 바그다드 카페가 유일한 휴게소 역할을 합니다.


팔미라 유적중 원형이 그래도 가장 잘 보존된 벨신전입니다. 팔미라를 건설한 셈족이 AD32년 자신들이 숭배하던 태양신을 모신 신전입니다. 견고해 보이는 벽체와 무엇보다 웅장한 기둥들이 인상적입니다.


팔미라는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자연 사막을 왕래하던 대상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점차 실크로드 상의 중계무역도시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동방진출을 노리던 로마가 BC63년에 팔미라를 속주로 삼았고, 비슷한 역할을 하던 페트라가 AD 106년에 멸망하면서 팔미라는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팔미라의 전성기는 짧았습니다. 어린 아들 대신 섭정을 맡은 제노비아가 등장하면서 팔미라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제노비아는 그리스어, 아랍어, 이집트어에 두루 능통했으며, 스스로를 '팔미라의 클레오파트라'라고 칭할 정도로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로마가 서쪽의 갈리아와 전쟁에 빠져들자 이 틈을 타 제노비아는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을 점령하는 등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급기야 제노비아는 자신의 얼굴을 새긴 주화를 발행했는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로마의 분노를 샀습니다. 주화 발행은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로마는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팔미라 징벌에 나섰으나 오히려 한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룻만에 탈출에 성공한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자 팔미라는 도저히 로마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항복 권유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제노비아는 사산조 페르시아에 원조를 청하러 가던 길에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로마에 잡히게 되었고, 로마는 반란을 일으킨 속주에 대한 본보기로 팔미라를 철저하게 파괴하게 됩니다. AD 272년의 일입니다.



팔미라의 원래 이름은 타르모르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근처에 대추야자(palm)가 흔하다는 이유로 팔미라(Palmyra)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게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팔미라의 한켠엔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합니다.

로마로 끌려간 제노비아의 후일담은 역사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로마가는 길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녀의 출중한 미모에 반한 한 원로원 인사와 재혼하여 잘 살았다는 설(說)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로마 황제를 조롱했던 그녀의 자존심으로 보아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쨋든 팔미라는 제노비아의 몰락과 함께 역사속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막의 모래바람속에 파묻혔던 이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1930년대에 유적이 재발견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팔미라의 한쪽끝에는 무덤군이 있습니다. 팔미라에선 무덤조차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막의 주인은 베두인족입니다. 시리아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미라 주변엔 양을 치는 유목민 베두인 족들이 많습니다.


팔미라의 도시 구조는 로마식 그대로입니다. 로마도시는 늘 도로가 가장 중요합니다. 메인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은 요르단의 제라쉬에서 본 것 처럼 광장을 만들어 행사나 교역의 중심지로 삼습니다. 
팔미라에선 이 교차점에 4개의 장식기둥으로 이루어진 탑문을 세웠는데 '테트라필론'이라 합니다. 마치 제노비아 여왕을 연상시키듯 정말 우아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팔미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열주들. 기둥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들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산위의 건축물은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아랍 성채입니다.




이 거대한 열주들은 500m 이상 이어집니다. 열주들 옆으로는 극장과 신전, 시장, 법원과 의회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아랍 성채에서 내려다본 팔미라 전경입니다. 주변으론 끝도 없는 사막이 이어지고, 팔미라라는 이름을 만들어지게 한 무성한 야자나무 숲이 이곳이 오아시스임을 말해줍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