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세이투어 생각2011. 1. 7. 06:00

 



조금은 지쳐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의 가사입니다.
그의 노랫말처럼 경춘선은 울적할 때 혼자 타기 좋은 기차였습니다. 아름다운 북한강변의 경치와 수시로 멈춰서는 간이역의 풍경들, 그리고 여행에 들떠 떠들썩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도 경춘선이 제일 좋은 건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때였습니다. 경춘선을 탈 때는 십중팔구 청량리역의 시계탑 앞이 약속장소였습니다. 꼭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어 기차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성리나 강촌으로 MT 가는 길은 늘 즐거웠습니다.

팀 마다 통기타를 꺼내들고 마치 경쟁하듯 기차가 떠나가라 부르던 노래들도 경춘선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풍경이었습니다. 물론 커피 한잔과 홍익회 직원이 팔던 삶은 계란을 까먹는 재미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경춘선에서 만나 사랑을 싹틔운 커플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여친과 춘천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서울 돌아가는 기차가 끊어지길 바라던 응큼한 남자들의 흑심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나에게도, 내 친구들에게도 ‘젊은 날의 초상’ 중 하나였습니다. 허나 이 모든 것들은 이제 경춘선이 사라지면서 함께 뒤안길이 됐습니다.

얼마나 빨라야하는 걸까요? 우린 얼마나 편해야 만족하는 걸까요?

경춘선 대신 들어선 복선화된 전철로 춘천까지 2시간 걸리던 게 1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고, 요금도 절반밖에 안됩니다. 

다 죽어가던 온양이 전철이 들어서면서 다시 살아났듯 춘천 경제도 이 덕에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춘천의 명물 닭갈비집은 밀려드는 손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고, 그간 얼어붙었던 부동산도 들썩이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나 역시 빠르고 편한 건 누구 못지않게 좋아합니다. 하지만 빨라진 시간만큼이나 추억도 빠르게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바람처럼 갔다가 바람처럼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예전같은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빠름은 결코 느림처럼 추억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쌓이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 버릴테니까요.

“기차 대신 전철이라…. 그게 무슨 재미야?”
모두가 좋아하는 일에 그냥 혼자 심통을 부려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