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보자마자 감이 오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고, 뭔지 모를 정감이 느껴지고,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고 싶어지는 그런 곳 말입니다. 나에겐 옹플뢰르가 그랬습니다.

언젠가 사회에서 은퇴하게 되면 나의 여행방식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여행이 아니라 한 지역, 한 도시에서 한두달씩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거리나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책이나 실컷 읽으면서 지내보고 싶습니다.

시간만 있다고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지만 암튼 그날을 위해 여행다니면서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곤 합니다. 살아보기 위해 다시 돌아올 곳 말입니다. 나는 옹플뢰르 도착 즉시 이곳을 버킷 리스트에 담았습니다.






지금은 작고 조용한 항구지만 한 때 옹플뢰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였습니다.

15세기 백년전쟁때는 요새화된 전쟁의 전초기지였습니다. 그 당시엔 전쟁을 앞둔 팽팽한 긴장감이 온통 이 도시를 꽉 채웠을 것입니다.
그 후엔 신대륙을 찾아나서는 탐험가들의 전진기지였습니다. 그 때엔 항구의 선술집마다 출항을 앞두고 대박의 꿈을 쫓는 모험가들의 희망담이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영화를 뒤로 한 채 한량들의 요트가 정박해 있는 소박한 항구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노르망디엔 가장 유명한 두개의 해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트르타로 대표되는 알바트르 해안으로 절경을 자랑하는 자연 풍경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플뢰리 해안인데 바로 이곳 옹플뢰르와 영화 남과여의 무대로 유명한 도빌등 보석같은 작은 항구들이 있습니다.   






옹플뢰르는 특히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한 도시였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인상파 화가들이 옹플뢰르를 화폭에 담았을 것입니다. 항구만해도 모네를 비롯, 터너 코로 뒤피 드랭 쿠르베 등이 작품을 남겼습니다. 









옹플뢰르엔 16-8세기의 노르망디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옹플뢰르의 구항구는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저 너머로 나가면 곧바로 영국해협입니다. 영국해협을 통해 모험가들은 신대륙을 향해 돛을 높이 올렸습니다.  












예술의 도시답게 옹플뢰르 시내엔 많은 갤러리들이 있고, 예쁜 소품과 수공예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많은 목조가옥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옹플뢰르 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골목안으로는 인상파 화가들인 부댕과 종킨드의 집도 있고, 천재음악가로 꼽히는 에릭 사티의 생가도 있습니다.


















세잔 르느아르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이 옹플뢰르를 즐겨 찾은데는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외젠 부댕의 영향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댕 이전만해도 그림은 그냥 아뜰리에에서 그리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댕은 밖으로 나가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부댕은 자신이 태어난 옹플뢰르는 물론 노르망디 해안가를 찾아다니며 빛이 드러내주는 색채를 풍성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그의 화법은 곧바로 인상파 화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자였던 모네에게도 자주 자연광을 스케치 하도록 했습니다.












이 고풍스런 성당은 생트 카트린 교회입니다. 옹플뢰르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프랑스에선 보기 드문 목조건축물인데 떡갈나무가 주재료입니다. 백년전쟁이 끝남을 감사하며 14세기말에 옹플뢰르 시민들이 어려운 가운데 십시일반으로 재료를 모아 만들었다 하니 더욱 뜻깊은 장소입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한달간 머물러보길 바래 봅니다. 그리고 그때는 시간을 완전히 잊고 정말 심심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