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생 미셀을 맨 처음 본 것은 한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속의 몽 생 미셀은 거대한 구름위로 육중한 몸체가 삐죽 드러나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후 몽 생 미셀은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로 머리속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실제로 맨 처음 본 몽 생 미셀은 역시 나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장엄함, 그 위풍당당함을 사진으로 표현해내는 건 실로 불가능합니다.
원래의 몽 생 미셀은 밀물이 되면 주위가 온통 바다물이 차서 마치 물위에 홀로 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순례자들이 갑자기 밀어닥친 바다물에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방파제위로 도로를 만들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몽 생 미셀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8세기경 오베르 주교가 ‘바위 위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미카엘 천사의 계시를 받은 후 이 불가사의한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오베르 주교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여러 차례 건축을 미루었지만 계속되는 천사의 음성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18세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끊임없는 증축과 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지상에서 80미터나 올라간 바위산에 157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1,000년의 대역사가 몽 생 미셀인 것입니다. 몽 생 미셀이란 이름은 바로 오늘의 이곳을 있게 한 ‘신의 전령’ 미카엘 천사의 불어식 발음 미셀(Michel)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몽 생 미셀은 역사의 격변기마다 많은 굴곡을 겪었습니다.
처음엔 수도원이었지만 영국과의 100년 전쟁때는 군사 요새였습니다. 프랑스군은 이곳에 30년간이나 주둔하며 영국과 맞섰습니다. 나폴레옹때는 악명높은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이곳에 수용되었습니다. 몽 생 미셀은 1863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이전의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의 입구로 들어서면 예전엔 군사 요새였음을 상기시켜주듯 대포가 전시되어 있고, 곧바로 마을로 통하는 좁다란 길이 이어집니다.





















몽 생 미셀은 하나의 마을과 다릅없습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인 만큼 많은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있고, 호텔도 여러개가 있습니다. 밤에는 몽 생 미셀 전체를 조명이 밝힌다하니 이곳에 묵으면서 그 광경을 보는 것도 아주 멋질 것입니다.






몽 생 미셀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외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밖은 낭떠러지 바다뿐이고, 길은 오로지 이것 하나뿐이니 감옥으로 쓰기에도 최적의 조건인 것 같습니다.









맨 꼭대기엔 교회와 아름다운 회랑이 있습니다. 이 회랑은 13세기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내 눈엔 어쩐지 이슬람풍으로 보였습니다. 얼핏봐선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하고 닮은듯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이 회랑은 수도사들이 명상을 하며 산책을 즐기기엔 아주 제격인 것 같습니다.






교회내부는 무척 소박합니다. 노르망디쪽 교회답게 아무 조각 장식도 없습니다. 청빈, 이것이 수도사와 목회자의 기본적인 본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몽 생 미셀의 교회를 보면서 들었습니다.















맨 꼭대기에 이르면 노르망디와 영국해협의 전망이 아주 멋집니다. 100년 전쟁때는 이곳의 망루에서 영국해군의 출현을 팽팽한 긴장감속에 감시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이곳에 수용된 정치범들이 바다를 나는 갈매기들을 보면서 자유의 그날을 꿈꾸었을 테지요...






밀물때는 저 갯벌도 모두 물이 차게 됩니다. 예전의 몽 생 미셀은 물이 차면 마치 바다위에 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지금 프랑스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이제 몽 생 미셀 여행을 마치고 '안개의 도시' 생 말로로 갑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