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농소는 루아르 밸리의 90여개의 성 중 가장 여성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힙니다. 난 무엇보다 이 입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올라 터널을 이루고 있는 이 길이 끝나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요? 나는 이런 기대감을 불러오는 길을 좋아합니다.

그 옛날 이 길엔 마차가 다녔을 겁니다. 또각또각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상상하며 나는 가급적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 길 끝에서 마주 칠 아름다운 쉬농소 성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길이 끝나자 드디어 이렇게 예쁜 성이 나타났습니다. 정면에서 본 쉬농소 성은 앙증맞아 보였습니다.










쉬농소는 '여인의 성' 입니다.
프랑수와 1세때인 1513년 왕실의 국고 관리인인 토마스 보히르가 이 성을 건축했지만 대대로 성주는 여인들이었습니다. 6명의 여인들이 이 성의 주인이었습니다.


















내부는 화려하진 않지만 여인들의 성 답게 단아했습니다.






이 성의 두번 째 성주는 디안느 드 푸와티에였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앙리2세의 총애를 받던 애첩이었습니다. 앙리2세보다 스무살이나 연상이었지만 굉장한 미모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디안느는 그 전 앙리2세의 아버지인 프랑수와 1세의 정부였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와 아들의 2대를 잇는 연인인 셈입니다. 지금으로선 있을 수 없는 묘한 관계이지만 당시로선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습니다.
앙리2세는 어린 시절 아버지 대신 스페인에 인질로 잡혀 가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럴때마다 늘 위로를 해주고, 힘을 북돋워주었던 사람이 바로 디안느였습니다. 어쩌면 앙리2세는 디안느에게 유모나 어머니같은 사랑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왕은 그녀에게 이 아름다운 성을 선물했습니다.   






앙리2세의 본처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였습니다. 그녀는 당대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메디치 가문 출신입니다. 왕이 연상의 여인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으니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녀도 이 성을 몹시 갖고 싶었으나 왕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메디치 가문과의 정략 결혼이었으니 둘 사이에 큰 애정은 없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앙리2세가 갑자기 죽으면서 사정이 돌변했습니다. 왕이 죽자마자 카트린은 기다렸다는 듯 디안느를 쫓아냈습니다. 그리곤 3대 성주로 쉬농소 성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카트린은 명문가 출신다운, 상당히 교양있는 여성으로 앙리2세도 애정은 없었지만 무척 존중해주었다고 합니다. 카트린은 그 후 앙리2세와의 사이에 둔 아들들이 잇달아 왕위에 올랐으나 한번도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쉬농소성에서 조용히 살아 프랑스 국민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쉬농소는 루아르강의 지류인 세르강에 걸치듯이 세워져 있습니다. 마치 학 한마리가 강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것 처럼 보입니다.










성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입구엔 15세기 성채의 흔적인 독립된 둥근탑이 있고, 그 안쪽으론 초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그리고 반원형의 아치 교각위에 세워진 본관 건물이 이어져 있습니다.  










쉬농소는 성 자체도 예쁘지만 정원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성에는 정원이 두개가 있습니다. 짓궃게도 사람들은 이 두개의 정원에 디안느와 카트린의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성 왼편의 디안느 정원은 크기도 훨씬 크고 좀 더 화려합니다.



카트린은 그 아름다운 디안느 정원을 걷기가 싫었던 걸까요? 카트린은 성주가 되고 나서 성 오른쪽에 또 하나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카트린 정원입니다. 카트린 정원은 크기도 작고, 소박하지만 좀 더 단아한 멋이 있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