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비종과 밀레는 결코 떼 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미술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만종' '이삭줍기'가 모두 이곳에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밀레는 바르비종에 터를 잡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풍경과 농부를 함께 화폭에 담았습니다. 농부가 그림의 주제로 등장한 것은 밀레가 처음이었습니다.










바르비종엔 밀레의 아뜰리에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밀레와는 상관없는 개인 소유지만 실내엔 밀레에 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만종'과 '이삭줍기'가 그려진 벌판엔 샛노란 유채꽃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만종'은 하루의 일을 마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 맞춰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농촌 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을 담았다고 교과서에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롭고, 소박한 농촌의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밀레가 그린 ‘만종’은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죽은 아이를 매장하기 전에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린 만종에선 부부의 발밑에 있는 바구니에 감자 대신 죽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밀레는 이 그림을 살롱에 출품하기에 앞서 절친한 친구의 충고로 죽은 아이를 감자로 고쳤다고 합니다. 


처음 밀레가 그린 그대로 감자 대신 죽은 아이가 바구니에 담겨 있었더라면 이 그림은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가정이야 덧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왠지 궁금해 집니다. 
  





바르비종엔 밀레 외에도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쥘 뒤프레, 트르와용, 테오도르 루소, 도비니, 카미유 코로, 그리고 스페인 화가인 디아스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소위 바르비종파를 이루었습니다.
바르비종파는 아뜰리에를 벗어나 자연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리려 했습니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지만 자신들이 보는 자연풍경이 모두 다르듯 화가들마다 화풍이 각기 달랐습니다.
 









물론 지금 바르비종엔 밀레나 코로같은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풍경을 그리려는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 아뜰리에를 마련해 놓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바르비종에선 이들 아뜰리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르비종은 아주 작아서 시내라 할 것도 없습니다. 30분만 걸으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자그만 박물관도 보입니다.






아뜰리에나 박물관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바르비종 시청사입니다. 예술의 도시답게 시청도 예술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바르비종의 거리는 참 예쁩니다. 걸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주 조용한 동네지만 아이들을 보면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민보단 여행자가 더 많아 보입니다.


















바르비종에도 로또는 필요한가 봅니다. 로또 간판이 왠지 이곳과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듯 아주 묘합니다.










마을 뒷편은 드넓은 숲입니다. 퐁텐블로와는 1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니 혹 왕가의 사냥터와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 숲에 들어가 가만히 숨을 쉬고 있으면 그게 보약이란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