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는 어딜가나 볼거리가 넘치는 도시지만 그 중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화약문에서 카를교에 이르는 구시가지 입니다.

이 중에서도 구시가지 광장은 왜 프라하를 '살아 있는 건축 박물관'이라 부르는 지 실감나게 해줍니다. 중심부에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는 구시가지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들은 고딕, 바로크, 아르누보, 르네상스 등 유럽의 건축양식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구시가지 광장의 상징은 뾰족한 두개의 고딕 첨탑이 너무나 인상적인 틴교회와 구시청사 벽에 장식되어 있는 천문시계입니다.






매시 정각만 보면 천문시계 앞은 그야말로 인파를 이룹니다.
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시계는 15세기에 만들어졌으나 제작자는 시계 장인인 미클라슈가 만들었다는 설과  당시 카를 대학 수학교수이자 천문학자인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두가지 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시계는 특이하게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위는 당시의 천동설에 기초한 천체의 움직임과 시간을 나타냅니다. 시계의 파란 바탕은 푸른 지구를 상징하며, 3개의 시계바늘은 각각 태양과 달과 별이 움직이는 시간을 표시합니다.
아래는 12개의 별자리를 나타내는 황도 12궁과 12달을 나타내는 달력으로 하루에 한 눈금씩 움직입니다.






무엇보다 이 시계의 작동순서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매시 정각이 가까워지면 오른쪽에서 두번 째의 해골이 줄을 잡아 당겨 때가 이르렀음을 알립니다. 시간이 간다는 것은 죽음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좀 섬짓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두개의 창이 열리면서 성 바울을 위시한 12사도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맨 왼쪽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자상인데 허영을 상징합니다. 여자상 옆으론 유태인 고리대금업자로 탐욕을 뜻합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 한켠엔 유태인 지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많은 유태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고리대금업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역시 유명합니다.

해골옆의 맨 오른쪽 상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터키인입니다. 욕망을 상징하는 터키인은 때가 오고 있음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터키인이 프라하의 벽시계에 등장하는 걸까요? 그건 오스만투르크 제국 때문 입니다.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유럽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13세기말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시작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6-7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계가 만들어진 15세기말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미 체코의 코 앞까지 닥쳐와 있었습니다. 국경을 마주한 헝가리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손길이 뻗쳤으니 공포가 극도에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체코는 결국 16세기에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왕으로 맞아들입니다.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힘을 빌어 나라를 지킨 모양새가 되었으나 이후 400년간이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 큰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오스만투르크가 가톨릭이 아닌 이슬람 국가란 점도 분명 체코가 가졌을 공포에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암튼 12사도들의 행진이 끝나면 바로 위 사진에선 잘렸지만 맨 위의 황금 수탉이 홰를 치면서 종소리를 내는 데 그 내용은 '여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부도, 허영도, 욕망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입니다.  





 

아래쪽 시계의 한가운데 그림은 프라하를 나타내는 문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장을 에워싼 원형은 12달을 상징하며 바깥쪽의 작은 원형 12개는 각 달의 상징과 특징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엔 4개의 인형이 장식되어 있는데 왼쪽부터 철학자와 천사, 천문학자와 연대기 편찬자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유럽에선 무조건 꼭대기로 올라가야 합니다. 유럽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문시계탑에 오르면 구시가지 광장을 중심으로 한 프라하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구시가지 광장엔 체코가 낳은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노천카페의 모습도 보입니다.






구시가지의 랜드마크인 틴 교회입니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으로 탑 높이가 80m나 됩니다. 두개의 첨탑 사이를 자세히 보면 금색의 원형이 보이고 그 안에 성모 마리아 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틴교회라고 불리지만 실제 이름은 '틴 앞의 성모마리아 교회'입니다.






멀리 프라하성의 성 비트 대성당도 보입니다.
















바로크 양식의 성 니콜라스 교회도 보입니다. 이 자리엔 원래 베네딕트 수도회의 작은 교회가 있었으나 화재로 다 타버려서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든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모짜르트가 자주 찾아와 오르간 연주를 한곳으로 유명합니다. 1791년 그가 죽었을때도 이곳에서 추모미사가 열렸습니다.






체코와 결코 떼어 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인물인 얀 후스(1372-1415)의 동상입니다.
얀 후스는 겨우 37세에 프라하 대학의 총장에 올랐던 체코의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성직매매 등 썩을 대로 썩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며,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성서만이 유일한 권위이며, 교회의 토지 소유와 성직자들의 세속화에 반대했던 그는 결국 종교개혁의 원조인 셈입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의 가톨릭교회는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얀 후스는 1411년 교황에 의해 파문을 당했고, 그 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자 1415년엔 화형에 처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체코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켜 1419년부터는 무려 16년간이나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암튼 체코 민족주의와 결합해 얀 후스는 체코의 숭상받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가 화형당한 7월6일은 지금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분홍색 색감이 너무나 아름다운 킨스키 궁전입니다. 18세기 중반에 지어졌는데 로코코 양식의 아주 우아한 건물입니다.






광장 주변은 체코 특유의 파스텔 톤 건축물들로 가득하고, 그 아래에는 멋진 노천카페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이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카를교로 가봤습니다. 프라하 성은 역시 이곳에서 보는 게 가장 멋집니다.






카를 대교는 좌우 난간에 각기 15개씩 전부 30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어 더욱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인상들은 일부는 성서에서, 일부는 체코의 역사에서 따온 영웅들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성인상들은 다리 건축후에 추가되었습니다. 












카를교는 늘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거립니다.

카를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올랐던 카를 4세의 명으로 1357년에 착공, 약 60년 걸려 완공되었습니다.
















카를교 여행을 더 흥미롭게 하는 건 바로 이 거리 연주자들입니다. 곳곳에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데 굉장히 수준이 높습니다.











거리 미술도 카를교에선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 작품중의 하나가 지금도 우리집 화장실 문에 걸려 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