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의 대표 정원인 미라벨 정원으로 왔습니다. 미라벨은 '아름다운 조망'이란 뜻입니다. 말 뜻 그대로 미라벨은 꽃이 만발한 정원뿐 아니라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조망하는 데도 최고였습니다.






무엇보다 미라벨 정원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로 유명합니다.
말광량이 수녀 마리아가 폰 트랩 대령 집안의 가정교사로 온 후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공원에서 도레미송을 부르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마리아 수녀가 1949년 쓴 자전적 소설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가 원작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1956년 독일에서 먼저 'Die Trapp-Familie'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어서 큰 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이 독일 영화는 195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올려지게 됩니다.
 
이 뮤지컬은 이후 1963년까지 43개월간 무려 1,143회나 공연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토니상을 7개나 휩쓸었을 정도로 '사운드 오브 뮤직'은 5-60년대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뮤지컬이었습니다. 

'에델바이스' '도레미 송'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노래들은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공동작품인데 이 콤비는 이미 '오클라호마' '남태평양' '킹 앤 아이' 의 음악을 만든 명장들이었습니다.

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1965년에 드디어 우리가 잘 아는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등 5개의 오스카를 받았고,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뮤지컬 영화가 되었습니다.

마리아 수녀의 소설은 소설 자체로서도, 독일의 영화에서도,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도, 뮤지컬 영화에서도 모두 대성공을 거둔 정말 보기 드문 작품인 셈입니다.






영화와 소설에서 마리아 수녀가 밝힌 사실과는 조금 다른 점도 있습니다. 영화에선 폰 트랩 대령일가가 축제극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탈출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각색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갔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가 나치 치하에 들어가게 되자 폰 트랩 일가는 오스트리아를 떠나기로 하고 1938년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 영국을 거쳐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 막대한 여행경비는 모두 곳곳에서 가족 공연을 벌여 마련했습니다.
폰 트랩 가족은 1941년 잘츠부르크와 자연환경이 비슷한 미국 버몬트 주의 스토(Stowe)라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마리아 수녀가 가정교사로 처음 들어갔을 때 폰 트랩 대령의 아이들은 이미 7명이나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결혼 후 3명의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폰 트랩 일가는 또 다시 가족합창단을 구성해 미국과 유럽에서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들 가족은 스토의 농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폰 트랩 부부는 세상을 뜬 후 농장의 가족 묘원에 안치되었고, 농장의 샬레는 'Trapp Family Lodge'라는 호텔로 개조해 막내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혹 폰 트랩 일가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http://www.trappfamily.com 사이트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멋지게 꾸며 놓은 농장 호텔과 가족들의 사진, 뒷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얘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다시 미라벨 정원으로 돌아옵니다.

화재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자리엔 원래 미라벨이라는 호사스런 궁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7세기초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로메알트를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성직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지 모르지만 당시 잘츠부르크는 대주교의 영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암튼 화려한 궁전은 1818년의 화재로 타버려 없어졌고, 그리스 신화의 조각상들과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는 정원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미라벨 정원은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 뿐 아니라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미라벨 정원을 나와 시내로 가봅니다.




 


미라벨 정원 옆에는 모차르트의 집이 있습니다. 생가는 아니고 모차르트가 17살때부터 24살때까지 7년간 살았던 집입니다.






모차르트는 생전에 경제적인 빈곤에 시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절대 빈곤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보단 헤픈 씀씀이가 분명 한몫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명성에 비해선 부유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유럽의 음악가와 미술가 같은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왕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력한 가문의 후원없인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재음악가로 일찌감치 유명해진 모차르트에겐 여러 귀족과 왕실의 후원이 따랐지만 큰 액수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암튼 모차르트에게 빈곤을 안겼던 오스트리아지만 반대로 지금의 오스트리아 인들은 모차르트 덕에 큰 돈을 벌고 있습니다. 모차르트 이름을 내건 마케팅은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모차르트와 조금의 관련만 있어도 동상을 세워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초콜릿은 대표적인 모차르트 마케팅입니다.






사실 모차르트와 초콜릿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특별히 맛이 다른 초콜릿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모차르트 이름을 단 초콜릿은 여행자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아마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기념품 중 하나가 이 모차르트 이름을 단 초콜릿일 것입니다. 


 



전설적인 지휘자 폰 카라얀도 잘츠부르크 태생입니다. 카라얀은 무려 34년간이나 베를린필을 이끌었던 세기적인 마에스트로였습니다. 특히 카라얀의 베토벤 해석은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라얀은 어두운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는 예술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나치에 입당해 부역을 했고, 무수히 많은 레코딩으로 '20세기 최고의 상업적인 예술가'라는 혹평도 듣고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론 잘차흐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잘츠부르크 최고의 쇼핑가인 게트라이데 거리로 왔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간판입니다. 잘츠부르크 인근의 할슈타트는 중부유럽 최초의 철기문명으로 유명합니다. 철이 흔한 지역답게 게트라이데의 예쁜 간판들은 모두 철로 만든 수공품들입니다.






간판의 크기는 모두 자그맣게 규제되어 있는데 맥도널드도 예외는 아닙니다. 게트라이데 거리에서만큼은 맥도널드 특유의 커다란 노란색 간판을 볼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맥도널드 간판이라고 합니다.






문맹자들을 위해 간판을 보면 금방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수 있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이곳은 아동복 코너인 듯 합니다.






신발가게 간판이고요.






빵집이었던 듯 한데 정확한 기억이 안납니다.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 그는 바로 이 게트라이데의 노란색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아마데우스는 독일어로 '신의 은총'을 뜻합니다. 필경 7명의 자녀중 5명을 일찌감치 잃은 모차르트 부모가 오래 살라는 뜻으로 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정말 '신의 은총'이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음악적 천재성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모차르트는 3살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6살때 피아노용 미뉴에트를, 8살때는 교향곡을 작곡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흔히 요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이는 잘못된 얘기입니다. 지금 세상으로야 충분히 요절이라는 표현을 쓸만한 나이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남성의 평균 남성 수명은 30세를 약간 넘기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 입구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모차르트가 쓰던 낡은 피아노와 악보, 바이올린, 초상화, 편지등을 볼 수 있습니다.











게트라이데 거리엔 많은 카페와 유명 레스토랑들도 몰려 있습니다.






밤에 본 미라벨 정원과 호엔찰츠부르크 성입니다.
















밤의 잘츠부르크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저녁 먹고 소화시킬겸 이곳저곳 걸어다니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물론 밤에도 매우 안전한 도시입니다. 











특히 여름엔 이 잘차흐 강변을 따라 걷는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그냥 하염없이 걷고 싶은 그런 경치와 그런 분위기를 잘츠부르크는 갖고 있습니다.

이제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여행지인 수도 빈으로 갑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