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최대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입니다. 오래된 카페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들, 유명 브랜드샵들이 몰려 있습니다.

빈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여행자들로 늘 북적거리는 케른트너에선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 공연과 퍼포먼스가 찾는 이들을 늘 즐겁게 해줍니다. 






케른트너 거리의 성 슈테판 대성당입니다. 빈의 상징이자 랜드마크 역할을 합니다. 왠만한 광각렌즈로는 건물 전체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정말 거대한 교회입니다.






12세기초 처음 지어진 성 슈테판 교회는 15세기에 빈이 대주교의 관할구역으로 승격하면서 규모도 엄청난 크기로 바뀌었습니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결혼식은 온갖 왕족과 귀족들이 참석할 만큼 성대했지만 장례식은  몹시 초라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재의 말로는 참 쓸쓸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도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빈은 예술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케른트너의 예술가들을 보면 그런 말이 이해가 됩니다.






케른트너 거리의 삼위일체 상입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삼위일체상도 페스트의 끝남을 감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페스트 만큼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염병도 없을 것입니다. 134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페스트는 단기간내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1350년까지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감소시켰습니다. 그리고 17세기말까지 유럽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페스트로 인한 인구의 감소는 중세 장원제를 몰락시켰고, 가톨릭에 대한 권위를 실추시켜 종교혁명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케른트너 거리에선 이런 자잘한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빈은 링이라 불리는 환상(環狀)도로를 따라 시청, 국회의사당, 오페라 하우스 같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네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시청사 건물입니다. 특히 시청앞 광장은 연중 다양한 이벤트 행사가 열리는 명소입니다. 밤에 시청앞 광장을 가보면 늘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입니다. 마치 그리스 신전 같습니다. 앞에는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과 평화의 여신인 아테나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미술사 박물관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7,000여점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입니다.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함께 유럽의 3대 극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69년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이곳에서 개관기념작으로 초연되었습니다.

처음 공사때만해도 빈의 오페라 하우스는 신고전주의적 디자인 때문에 혹독한 비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찌나 심했던지 건축가는 자살했고, 실내 장식가도 이에 대한 충격으로 병을 앓아 얼마 후 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오페라 하우스는 빈 시민들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입니다. 2차 대전 후 빈을 재건할 때 시민들은 가장 먼저 복구해야할 건물로 오페라 하우스에 몰표를 던졌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악평에 시달렸던 파리의 에펠탑과 퐁피두 센터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이런 걸 보면 다수가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이나 시내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타보는 것도 해외여행에선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빈 시민들의 휴식처인 시립공원의 입구입니다.






시립 공원의 상징은 바이올린을 켜는 요한 스트라우스 동상입니다. 오스트리아를 소개하는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빈 시립공원에선 빈 시민들의 일상적인 휴식을 볼 수 있습니다. 






빈에서 가까운 근교엔 슈베르트가 작곡을 위해 자주 찾았던 뫼들링이란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이곳에서 '보리수'를 작곡했고,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슈베르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라는 거물에 가려 생전엔 큰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후엔 그의 곡들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빈 교외엔 베토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가 있습니다. 불후의 명작인 '전원'과 '장엄미사'가 바로 이 마을에서 탄생했습니다.






음악가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충격일 것입니다. 베토벤 역시 절망에 빠져 이 집에서 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베토벤이 사용하던 집에는 그의 악보와 동상, 그리고 명곡을 탄생시킨 피아노가 남아 있습니다.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거리와 숲을 걸으면서 전원의 악상을 떠올렸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