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만큼 큰 기대를 품고 찾아가는 여행지도 드뭅니다. 하지만 아테네만큼 많은 여행자들을  실망시키는 곳도 드뭅니다.

유럽의 문명을 낳았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리스 신화를 만들어낸 도시 아테네. 그래서 여행자들은 고대 도시의 고풍스러움이 가득할 것이란 기대를 잔뜩 안고 아테네를 찾지만 이런 여행자들은 십중팔구 첫날부터 실망하게 됩니다. 이런 상상속의 아테네는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변의 플라카 지구에서나 볼 수 있을 뿐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무척 현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역사는 무려 3000년입니다. 대부분 나라의 역사가 그렇듯 그리스 역시 3000년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모진 세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로마하의 아테네는 로마인들의 그리스 문명에 대한 존경심 덕에 그런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5세기부터 400년간이나 지속된 오스만투르크 제국 치하가 무척 혹독했습니다. 이 시기동안 그리스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 들었고, 아테네의 수많은 유적들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아크로폴리스가 건재한 것은 기적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런 세월의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아테네 여행은 무척 매력있습니다. 아테네뿐 아니라 그리스 전역이 정말 매력 덩어리입니다.  꿈같은 에게해의 섬, 미케네와 크레타 같은 신화와 전설의 도시들, 대협곡을 보여주는 비코스와 아기자기한 산간마을들, 기이한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신탁이 내려진 델포이...

내 모든 여행을 통틀어 그리스는 가장 행복한 여행중 하나였습니다. 자연과 유적, 그리고 사람, 우리네 김치처럼 각 집마다 맛이 달랐던 하우스와인과 올리브까지..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은 게 없었던 여행이 그리스였습니다.

한동안 그리스의 매력을 집중적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스 첫 번째 편인 만큼 아테네의 상징이자 그리스의 상징이기도 한 아크로폴리스부터 갑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기전 우선 아레오파고스 언덕부터 찾았습니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에겐 사도 바울이 그리스 철학자들과 논쟁하며 복음을 전파한 곳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사진 오른쪽으론 이를 기념하는 현판이 서 있는게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도시 국가시절 재판장소였습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언덕에 올랐는지 계단이 정말 거울처럼 반들반들합니다. 올라갈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언덕을 올라야 하는 건 무엇보다 뛰어난 전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본 헤파이스투스 신전입니다. 고대 아고라 안의 건축물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헤파이스투스는 올핌포스의 가장 중요한 12신 중 하나입니다. 보통 대장간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만들지 못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우스 신의 최고의 무기인 번개와 아이기스라는 방패를 만들어준 것도 헤파이스투스였고, 이 세상에 온갖 재앙과 질병을 가져온 문제의 여자 판도라도 그의 작품입니다. 

헤파이스투스는 올림포스 신 중에서 가장 못 생긴 신이었습니다. 게다가 절름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우스는 번개와 방패를 만들어준 감사의 표시로 여신 중에서 가장 예쁜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선물해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 헤파이스투스는 행복했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불만족스럽던 아프로디테는 온갖 신들과 바람을 피워댔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정을 통한 후 에로스를 낳았습니다. 

암튼 그리스 신화가 재미있는 것은 인간사와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어떤 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입니다. 하지만 모든 신들의 관계는 의미가 있습니다. 헤파이스투스와 아프로디테의 만남은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뜻합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선 아탈로스 주랑 박물관도 아주 잘 보입니다. 고대 아고라 유적중 유일하게 완벽하게 복원된 건물입니다. 안에는 고대 아고라터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탈로스 주랑 박물관 앞으로는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그리스 정교회 건물도 보입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선 특히 아크로폴리스의 전경이 아주 멋집니다. 정말 요새처럼 지어진 아크로폴리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레오파고스 언덕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 같은 수많은 폴리스(도시 국가)의 집합체입니다. 왜 그리스가 폴리스의 형태로 발전했는지는 전역을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리스엔 정말 산이 많습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려면 몇개의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합니다. 교통과 도로가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 시절엔 이 산 하나가 자연스럽게 넘기 힘든 경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산과 산사이의 평지엔 국가 하나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환경입니다.






드디어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섰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높은 언덕을 중심으로 두고 발전했습니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아 늘 방어의 개념을 우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높은 언덕이 바로 폴리스입니다. 그러다 폴리스가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도시국가내의 언덕엔 아크로(높은이라는 뜻의 형용사)가 붙어 아크로폴리스가 되었습니다.

즉, 이 말은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에만 있던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각 도시국가들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이곳에 방어를 위한 요새를 구축하고 그들이 모시는 가장 중요한 신전을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지금의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것만을 뜻합니다.






아크로폴리스 들어서면서 아래로는 두개의 극장이 보입니다. 이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과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것입니다.






이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161년에 건축되었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음악당의 앞 쪽 벽면만 남아 있습니다. 이 음악당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름엔 자주 오페라와 콘서트, 연극등이 열리는 데 음악당 전체로 울려 퍼지는 사운드가 일품이어서 당시의 설계가 굉장한 수준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이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엔 6천석 규모의 청중석이 마련되어 있는 데 좌석은 공연을 위해 근래 새로 만든 것입니다.






디오니소스 극장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조금씩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극장 이름은 술과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는 인도까지 가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그 당시에 이미 인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극장터를 보아 대략 1만5천석에 달하는 굉장히 큰 규모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핵심인 파르테논 신전과 오른쪽으론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보입니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모두 아테네를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큰 싸움을 우려한 제우스는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두 신에게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다 더 유익한 선물을 하는 쪽이 아테네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주무기인 삼지창을 땅에 찔러 샘물이 솟게 했습니다. 이를 본 아테나는 그 옆에 올리브 나무를 심어 열매를 자라게 했습니다. 신들과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아테네가 되었고,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나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해 모시게 되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매력은 육중한 기둥에 있습니다.  총 46개의 기둥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데 각각 높이가 10m에 기둥 둘레가 2m나 됩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3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육중한 기둥이 2500여년의 세월을 떠받쳐온 것입니다.






하지만 2500년을 견뎌온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파르테논은 이곳저곳 끝도 없는 보수 공사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끝도없이 계속되는 보수 공사는 파르테논 신전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월과 역사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6명의 소녀가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참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소녀상은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아크로폴리스내의 박물관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박물관의 모습입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내 전경입니다. 오른쪽으로는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리카비토스 언덕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습니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는데 특히 이곳에서 보는 아테네 야경이 볼만합니다.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에는 빨간 지붕 건물들이 밀집한 플라카 지구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19세기에 지어진 집들입니다.

하지만 플라카 지구를 경계로 나머지 부분의 아테네는 모두 현대 건물들입니다. 그것도 공원 하나 없이 건물들로만 빽빽하게 차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에 고풍스런 고대도시를 연상하고 온 여행자들은 아테네에 대해 실망하지만 볼거리들은 이곳저곳에 많이 있습니다.






제우스 신전도 내려다 보입니다. 






아테네에선 밤에 보는 아크로폴리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이 처럼 환하게 조명을 비추는 데 낮과는 깊이가 다른 역사의 엄숙함을 느끼게 합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