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신화의 섬 델로스로 가기 위해 다시 미코노스 항구로 나왔습니다. 델로스는 미코노스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바람이 심하면 배멀미를 할 수도 있지만 마침 바다가 잔잔해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드디어 델로스에 가까워졌습니다. 기둥과 오랜 주거지터들이 델로스의 역사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섬 한가운데엔 킨토스 산이 있습니다. 해발 113m의 야트막한 산으로 항구에서 정상까지 천천히 걸어 30분이면 오를 수 있습니다.






델로스 섬의 선착장입니다. 매표소를 빼면 특별한 건물도 접안 시설도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큰 유람선도 항구에 대는 것으로 보아 바다가 꽤 깊은 모양입니다.






미코노스에서 델로스 섬으로는 배편이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기에도 오후 1시 정도가 델로스로 오는 마지막 배입니다. 델로스를 여행하려면 오전 일찍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부두에서 델로스 섬으로 조금 들어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로마 시대의 아고라입니다. 예전에는 이 아고라에서 진귀한 물품들이 거래되고, 수많은 정치적 토론이 오갔을 것입니다. 

사실 델로스는 길이 5km, 폭 1.3km의 작은 섬입니다. 에게해의 키클라데스 제도 내의 39개 섬중에서도 제일 작은 축에 속합니다. 왜 이런 작은 섬이 고대 그리스 시절에 중심이 되었을까요?

이는 아마도 델로스가 키클라데스 제도의 중심에 있다는 지리적인 위치와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일 숭배하던 아폴론 신이 이 섬에 태어났다는 신화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델로스 곳곳엔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돌들이 마치 순서를 기다리듯 줄지어 서 있습니다. 델로스는 기원전 1세기에 소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약탈과 학살을 당한 이후 쇠락의 길을 걷다가 중세 들어 베니치아인들과 오스만 투르크 인들이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마구 석재를 뜯어가면서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혀진 섬이었던 델로스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발굴에 나서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부두에서 가까운 competaliasts agora 입니다.

신중의 신인 제우스는 소문난 바람둥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들도 마누라는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제우스는 레토를 임신시켰지만 해산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했습니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가 이를 알고 그리스 전역에 압력을 넣어 아이를 낳을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레토의 아들이 헤라의 아들보다 더 위대한 신이 될 것이란 예언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고민끝에 제우스는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마침 바다속을 표류하던 델로스 섬을 지금 위치에 떠올려 해산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듯 험난한 과정을 거쳐 레토는 델로스에서 간신히 아이를 낳았는데 바로 태양의 신이자 제우스에 이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아폴론 신과 쌍둥이로 함께 태어난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입니다.






델로스 최고의 중심가였던 '성스러운 길'입니다. 왼쪽으론 필립5세의 주랑이 쭉 서 있었습니다.






델로스엔 기원전 25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니 무려 4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델로스가 역사에 등장한 건 바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 때문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세계 최강은 단연 동방의 페르시아였습니다. 이 거대한 적을 앞두고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맹주삼아 하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동맹국들의 주요 정책은 델로스 섬에서 열린 정기 총회에서 결정됐고, 공동 기금을 모아 놓은 금고 역시 델로스 섬에 있어서 이를 델로스 동맹이라 불렀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통해 그리스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델로스 동맹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의 패권 다툼에서 패함으로써 BC 338년에 최종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델로스는 델로스 동맹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가 좀 더 오래갔습니다.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로마시대에 델로스는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더욱 발전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예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부터 소아시아 국가들의 침략으로 1만명에 달하던 섬 주민들이 일시에 몰살당하면서 델로스는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폴론 신전은 이제 터만 남아 있습니다. 아폴론은 올림포스 최고의 미남으로 태양의 신, 궁술의 신, 예언과 음악의 신, 의술의 신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많은 병원에선 아폴론 신을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델로스의 상징인 사자의 테라스입니다. 기원전 7세기에 역시 에게해의 섬인 낙소스인들이 만들어 봉헌한 것입니다. 원래는 9마리의 사자가 마치 델로스를 호위하듯 늘어서 있었는데 4마리는 사라지고, 지금은 5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사진의 야외에 있는 사자상은 모두 모조품이고, 진품은 델로스 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아담한 델로스 박물관입니다.











이게 낙소스인들이 만들어 보내준 2700년전의 사자상 진품입니다.











거주지 밀집지역의 클레오파트라 하우스입니다.






물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은 그리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 집의 한켠에 집주인은 디오스큐리테스, 안주인은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이 동상이 그 부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집과 이웃인 디오니소스의 집입니다. 

델로스 유적의 특징은 모자이크로 바닥이 장식된 집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모자이크는 돌에 물감을 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냥 천연색의 돌을 모아 색상별로 장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천년이 지나도록 색이 고스란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고대 도시에 극장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그냥 돌덩이가 아무렇게나 뒹구는 산 처럼 보이지만 원래 저곳에 모두 대리석을 깔아 관중석으로 사용했습니다. 규모로 보아 약 6천 명 정도 수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앞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수천 년 세월동안 벽체나마 남아 있는 것도 용하다 할 것입니다.






델로스 전성기에는 이 자그마한 섬에 3만명이 살았으니 굉장히 많은 집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가로이 유람선이나 드나드는 저 부두에는 델로스 동맹 시절엔 페르시아의 침공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을 가득 담은 군선이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시절엔 세계의 온갖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실은 상선이 온갖 모험담과 함께 저 부두에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