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2011. 7. 1. 06:00


문득 '세상살이가 재미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게 뭘까 라는 질문도 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순 없었습니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예전에도 그랬듯이 걷는게 최고입니다. 그냥 하염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걷다보면 명쾌한 해답을 찾거나 아니면 생각을 버리고 오게 되니까요.

혼자 걷기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강릉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다 되었습니다. 지난 6월12일 입니다.
내가 지금 현위치란 곳에 서 있단 말이지...
강릉 버스터미널 앞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걸린 지도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까마득해 보이는 길입니다.
"그래, 걷는 데 까지 걸어보자"
다시 다짐하면서 강릉, 동해, 삼척의 안내 책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곤 첫 목적지인 경포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터미널 앞에서 할머니가 파는 옥수수를 몇개 샀습니다. 그걸 떼어 먹으면서 걷고 있는 데 장승이 나타났습니다. 날 환영해 주는 걸까요?

경포호까지 거의 다 가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번개와 천둥까지 요란합니다. 마치 온 천지를 뒤 흔들듯 정말 격렬한 비와 천둥입니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마침 눈에 띄는 경포워터드림랜드라는 찜질방으로 황급히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오늘의 숙소로 정했습니다.   







새벽 5시. 드디어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행히 밤새 요란했던 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도 훨씬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얼마 안가 안목 해맞이 공원으로 가는 길의 소나무 숲에 들어섰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깨지 않아 숲을 걷는 내 발소리만 들릴 뿐, 주위는 참 고요했습니다. 빗방울 맺힌 솔숲은 싱그러웠고, 향긋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동해 일출은 볼 수 없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우중충했습니다. 








소나무길을 나오니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있는 상가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꼭두새벽이라 역시 고요합니다. 












걷다보니 멋진 다리가 나오고 갈림길입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솔바람 다리'라고 합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강릉항에서 남항진으로 갈 수 있답니다.







솔바람 다리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강릉사람들이 한 여름밤에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남항진까지는 무사히 찾아갔지만 그 다음인 안인항으로 가는 길은 무척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저기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아저씨께 여쭤봤습니다. 앞으로 가다보면 세 개의 신호등이 나오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꺽어 두 개의 신호등을 지나 오른쪽으로 따라가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신호등 위치를 다 외우고 계신지 난 그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설명을 들었어도 길을 찾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남항진에 활주로가 생기는 바람에 내가 가야할 7번 국도의 해안도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빙빙 헤매다가 한 아저씨에게 또 길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집이 그 근방이라며 안인항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운동 마치고 집에 가시는 길이랍니다. 그 분 차를 타고 가다보니 꽤 멀었습니다. 남항진에서 안인항까지 해안 따라가면 금방인데 활주로 때문에 돌아서 걸어갔다면 안인항엔 오후 늦게쯤이나 도착했을겁니다. 맘씨 좋은 아저씨 덕에 운이 좋았습니다. 

안인항부터는 전북함, 하슬라아트월드, 남침사적탑, 모래시계 등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멀리 큰 배가 보였습니다. 통일공원에 전시된 1999년에 퇴역한 DD-916 전북함입니다. 사진엔 안나왔지만 앞에 북한 잠수함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통일공원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만난 조형물입니다. 멀리서 봤을 땐 별 모양의 돌 같았는데 조금더 가까이 가보니 여성의 몸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주하고 보니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조형물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하슬라 아트월드입니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명칭입니다. 3만 3천평이나 되는 조각공원이라는 데 난 그냥 지나쳤습니다. 







애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갑자기 뱀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근데 다가가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이 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심심해질만하면 무언가 볼게 나와서 좋았습니다.

항구에서 자주 보게 되는 저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는 구조물의 이름이 테트라포드라고 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일명 삼발이라고도 한답니다.

정동진 근처의 이름 모를 부둣가인데 테트라포드가 분리된 모습은 참 생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저게 원래 시멘트를 감싸는 껍데기 같은 게 있는건가요? 암튼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정동진 역에 도착했습니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정동진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일출을 보겠노라는 로망을 품고 있는 곳인지라 혼자 왔지만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가요? 정동진은 무척 조용했습니다. 연인은 커녕.. 바닷가는 텅비어 있었습니다. 







정동진의 명물인 모래시계입니다. 모래가 모두 떨어지는 데는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영비 문제로 가동이 멈췄다고 합니다. 모래야 알아서 떨어지는 건데 무슨 운영비가 많이 들어 작동을 못한다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심곡리 가는 길인데 여기가 걷기에 굉장히 힘든 코스였습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주변에 도로를 따라 나무뿐이었는 데  덩그라니 있는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니 누군가 살고 있는게 분명했습니다. 서울의 고층빌딩과 넘쳐나는 자동차, 북적대는 사람들속에 살아오다보니 이렇게 한적한 곳에 살고 계신 집주인의 성격은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왠지 나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풍요로울 것 같습니다.







강릉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헌화로입니다. 심곡포구에서 금진항에 이르는데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걷기에도 너무나 예쁩니다. 이런 길만 계속되면 하나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걷다보니 자꾸만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이 예쁜 바닷가에 왜 역겨운 냄새가 날까요? 물은 깨끗해 보이는데...







얘도 냄새에 질식해 물에서 나와 이렇게 죽어있는 것 같습니다.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지만 죄다 차 문을 닫고 운전해서 모르는 걸까요? 걷는 나에겐 냄새 때문에 코가 참 힘들었습니다.







분명 물은 맑은데...
하수구 같은 냄새가 심합니다.
여행 끝나고나서 올라와 듣자니 비오는 날엔 공장에선 폐수를 무단방류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혹 그런 짓을 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헌화로를 빠져나와 옥계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래 예정은 헌화로가 끝나는 금진항 근처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전에 생각지 않게 차를 얻어 타는 바람에 시간을 꽤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더 걷기로 하고 옥계역 쪽으로 향했습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이렇게 그림이 그려진 작고 귀여운 집이 있었습니다.







오후 1시가 넘어 옥계역 근처의 밥집을 
찾았습니다. 된장찌개가 꿀맛이었습니다.

신기한 건 반찬이랑 밥이랑 된장찌개랑 담아온 쟁반을 테이블로 옮겨주지 않고 그대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옆 손님들도 한 쟁반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근해서 이 얘길하니 서울에는 그런 집이 꽤 있다는군요^^)

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새벽 5시부터 7시간 이상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불러 걷는게 점점 더 힘들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또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최순애]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