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코카서스 3국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로 구성된 삼국은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끊임없이  침략과 약탈을 당해온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사상 제법 힘이 있었던 나라들은 하나같이 코카서스 3국을 침략하고 정복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메디아 왕국,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 로마, 사산조 페르시아, 셀주크 투르크,  몽골, 이란, 러시아, 소련 등이 코카서스를 정복했던 나라들이니 국가 탄생 이래 독립을 유지한 기간이 거의 없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카서스 3국이 각기 다른 언어와 종교,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비로소 독립을 이룬 코카서스 3국여행은 아제르바이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 3국중 유일한 이슬람국가이며, 최근 카스피해 유전에서 쏟아지는  석유로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뤄가고 있는 중입니다. 

먼저 수도인 바쿠로 가보겠습니다.






19세기 양식의 건물들 사이로 구시가지인 이카리샤하르의 성채가 보입니다. 번듯하게 지어진 유럽풍의 이런 건축물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의 석유개발 자본에 의해 지어진 것들입니다.

코카서스 3국이 유럽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시아에 속하는 것인지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치 파리나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연상시키는 건물로만 보면 아제르바이잔은 분명 유럽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옛 시청사로 쓰이던 건물입니다. 뒤편 멀리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과 비슷한 건물이 공사중인 것이 보입니다. 아마 이 건물이 완공되면 바쿠의 랜드마크가 될 것입니다. 물론 석유자본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이카리샤하르로 들어가 봅니다. 구시가지 전체를 둘러싼 성채가 위풍당당해 보입니다. 이 성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눠집니다.







UNESCO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르반샤의 왕궁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려면 미리 '실망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합니다.

12세기 슈르반 왕의 궁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1967년에 복원된 건물입니다. 보수도 아니고 복원입니다. 아니, 엄격히 말하면 재건축이라고해야할 것 같습니다. 건물 내부도 완전히 새것이어서 텅 비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UNESCO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인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의 무궁무진한 석유를 둘러싼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왕궁에서 바라보이는 왕실 무덤입니다. 슈르반샤의 궁전은 주 궁전과 별궁, 왕실 무덤, 왕실 모스크, 그리고 왕실 목욕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규모가 큰 편은 아닙니다.







별궁으로 건축된 다방카나 왕궁의 정면 파사드 조각입니다. 섬세한 조각은 물론이고 정교하게 이어지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파사드 주변은 아랍어로 쓴 코란글귀가 장식되어 있더군요.  

카스피해 건너 이란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아제르바이잔은 시아파 교리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쿠는 12세기 이후 실크로드의 최고 중계무역지였습니다. 내륙을 따라 들어온 대상들과 이란을 거쳐 카스피해를 건너온 대상들이 집결하는 장소였기에  한때는 대단한 교역도시였던 듯합니다. 궁전 내부에 걸려 있는 지도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왕실 한편에 있는 바쿠비의 묘당입니다. 바쿠비는 당대의 유명한 현자였다고 하는데, 왕의 스승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왕궁 내부에 그를 위해 따로 무덤을 지어줄 정도였으니 왕이 그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바쿠비 묘당의 여러 비석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림이 아니라 글씨가 양각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대현자였던 바쿠비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왕실 전용 모스크의 내부입니다. 메카를 향해 기도실이 꾸며진 것은 여느 모스크와 똑같은데, 특이한 것은 성직자인 이맘이 앉는 의자와 나란히 왕의 의자가 놓여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슈르반샤의 왕궁에서 볼만한 꺼리는 상당히 적습니다. 그냥 휙 둘러보러 왔다면 어느정도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UNESCO 문화유산이라는 관점에서 기대를 갖고 오면 실망스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왕실 전용 목욕탕인 하맘에 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사우나 시설은 물론 각 탕마다 물의 온도를 다르게 한 시스템이 놀랍습니다. 이 정도라면 로마시대의 목욕탕 유적과 버금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하맘의 모습입니다. 방마다 수온을 달리 한 비결은? 각 방의 높이를 다르게 해서 끓인 물이 흘러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을 끓이는 곳에서 멀수록 물이 식어 덜 뜨겁게 만든 것이지요. 

역으로 생각하면 한 곳에서 끓인 물이 모든 탕을 통과하여 흐르는 방식이니 가장 뜨거운 물이 가장 깨끗한 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왕궁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이카리샤하르 골목길을 걸어봅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구시가지이지만 지금은 바쿠의 서민들이 거주하는  정감넘치는 골목입니다. 특히 호도나무로 만든 발코니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이는 다분히 페르시아풍의 건축양식입니다. 







좁고 낡은 골목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미로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잘못 들어서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겟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빨래를 밖에 내걸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이 부과됩니다. 반면에 이탈리아의 나폴리나 시칠리아 섬에서는 밖에 내걸린 빨래가 하나의 관광거리가 되기도 하지요.

바쿠의 이카리샤하르 지구에는 가는 곳마다 이처럼 빨래가 내걸려 있습니다. 보기 흉한가요? 미관을 해치는가요? 제 눈에는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정겹기만 합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한결같이 인자하고 자상했습니다. 건물에 돌출된 호두나무로 만든 발코니에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는 할머니들은 눈만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주거나 환한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모든 할머니들이 나름 곱게 차려입고 밖에 나와 계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발코니가 아니라 아예 골목에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계신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이카리샤하르의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각종 골동품가게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났습니다. 과거 실크로드 교역시절에 일종의 '자유뮤역지구'로 지정되었던 칼라디바랄리 지구입니다.

아직은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가게마다 골동품이 넘쳐났습니다. 잘만 고르면 싼값에 진귀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코카서스 3국여행중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화덕에 구운 빵입니다. 우연히 길거리 빵집을 만났는데,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을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호기심을 나타내자 커다란 빵 하나를 내어주며 맛을 보라고 건네주었습니다. 가뜩이나 맛있는 따근한 빵에 훈훈한 인심까지 더해지니 그 맛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화덕에서 노릿노릿 익어가는 빵... 보기만해도 군침이 돕니다.







칼라디바랄리 지구의 입구입니다. 두 개의 큰 아치가 출입문을 대신했는데 과거에는 이 문을 통해 먼 길을 걸어온 대상들이 속속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낙타를 타고 통과할 수 있도록 문의 천장이 참 높습니다. 


   




노점에 나와 있는 골동품 가게입니다.







칼라디바랄리 지구의 반대쪽 끝에는 바쿠의 상징인 메이든 타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2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높이가 28m에 이릅니다.

예전에는 이 타워가 카스피해와 맞닿아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카스피해를 건너오는 상선들을 감시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타워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메이든타워 앞에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니까요







메이든타워는 '처녀의 망루'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런 유서 깊은 타워에는 그럴듯한 전설이 붙기 마련입니다. 메이든타워도 마찬가지인데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 여러개 있었습니다.

한가지 공통점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가 뛰어내려 투신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무래도 처녀, 사랑 등등이 전설의 단골메뉴일 것입니다.  







8층높이의 메이든타워에 올라가서 본 전경입니다. 멀리 신시가지의 건물들이 카스피해를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메이든타워에서 본 이키리샤하르 지역입니다.







방향을 달리해서보면 남쪽의 유전지대가 보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1992년에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아마도 외세의 간섭없이 스스로의 자치독립국가를 건설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슴 벅찬 감격과 자부심은 멀리에서도 잘보이는 대형 국기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국기의 길이가 30m라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국기입니다.  







역시 아제르바이잔은 석유의 나라입니다. 나라 이름 자체가 '불의 땅'이라는 뜻이니 아주 오래전부터 땅속에서 천연가스와 석유가  쏟아졌나 봅니다. 대도시 바로 앞에 수많은 석유시추공이 박혀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는 축복이자 우환거리입니다. 석유 때문에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만큼 강대국들의 관심 또는 간섭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는 카스피해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지에서도 곳곳에 저런 석유생산 시설이 가득합니다.







바쿠시에서 잠시 외곽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성지인 아타샤하 신전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신전 정중앙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도를 할 때 항상 불을 피워놓았기 때문에 배화교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입니다.   







극단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교리는 불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후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하는 교리는 기독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됩니다. 신전 주변의 건물에는 이러한 교리를 설명하는 밀랍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자학하며 극심한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들도 있고, 병들어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찾아와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전 주변은 몰려드는 성지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건물들로 빙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록 천연가스가 고갈되어 파이프를 이용하여 가스를 공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전의 불길은 영원히 타오를 것입니다.







실크로드 시절 수많은 대상들이 묵어가도록 지어진 숙소가 카라반사라이입니다. 바쿠에 있는 카라반사라이는 무려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곳을 구경하러 하루 종일 여행자들이 기웃거립니다.







카라반사라이는 식당으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우리 일행들만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된 마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동안 차력사도 나오고 벨리댄서도 나와 흥을 돋구어 주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