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제르바이잔의 내륙 깊숙이로 들어갑니다.

수도인 바쿠를 벗어나니 곧바로 전원입니다. 그냥 우리네 시골과 별반 다를바 없는 소박한 풍경들입니다. 다만 간간이 길에서 만나는 시골사람들의 옷차림이 도시와 달리 무척 남루합니다. 농가들도 허름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도시와 농촌의 빈부 격차가 격심한 듯 합니다.
이것도 '자원의 저주'일까요? 다이아몬드로 인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처럼 말입니다. 암튼 석유가 무궁무진 나오는 아제르바이잔처럼 특정 자원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는 나라 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바쿠에서 북서쪽으로 한동안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마라자라는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이곳에 아주 멋진 풍경이 마치 비밀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마을 초입의 야산엔 비석이 아무렇게나 삐뚤빼뚤 서 있어 쓸쓸함을 더합니다. 아마 이 작은마을 사람들의 공동묘지인 듯 합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15세기 이슬람의 전설적인 성자라는 디리 바바의 무덤입니다.







디리 바바가 어떤 인물인지는 별 알려진 바 없습니다. 14세기에 활동한 이란의 수피파 성자로 '살아 있는 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정도인데 이슬람에선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인 듯 합니다.

이 곳이 디리 바바의 무덤임이 확인된 뒤로는 이슬람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슬람 수피파라 하면 금욕과 고행을 강조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입니다. 터키의 콘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옷을 입고 끝도 없이 빙빙도는 춤인 수피댄스가 바로 수피파의 의식입니다.







디리 바바가 누구든 상관없이 그의 무덤은 거대한 암벽에 동굴을 뚫어 조성하고 그 앞에 작은 모스크를 만들어 놓아 매우 특이했습니다. 







무엇보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형태가 오히려 경건해 보여 성자의 무덤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리 바바 무덤 건너로 보이는 마을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비석들이 코카서스 특유의 쓸쓸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라자 마을을 나올때 보았던 들판의 색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마라자 마을에서 더 북서쪽으로 들어가면 쉐마카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중세 시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가 있었던 유서깊은 장소입니다.







쉐마카 마을의 예띠 굼바즈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옛 수도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12세기에 이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일시에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슈르반 왕조는 재건을 포기하고, 아예 바쿠로 수도를 옮겨 다시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후 예띠 굼바즈는 버려지면서 7개의 왕가의 돔형 무덤만이 남았습니다. 그 풍경이 정말 한없이 쓸쓸합니다. 돔형 천장에 아무렇게나 자란 잡풀들이 세월의 허망함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돔형 무덤 주변으론 오래된 묘비석들이 지진과 세월의 영향으로 기우뚱하게 서 있습니다. 아마 귀족들의 무덤일 것입니다.

무덤의 주인들은 한때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이 그냥 방치되어 있습니다. 권력무상, 세월무상입니다.







인근의 쉐마카 마을이 보입니다. 예전같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지금 예띠 굼바즈엔 그냥 이름없는 동네사람도 함께 묻히고 있습니다.

















예띠 굼바즈의 이 돔형 무덤은 그 오랜 세월동안 이 부근에서 일어났던 지진과 전쟁등 역사의 모든 것을 저 자리에서 꼼짝않고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 아래에서는 저 돔형무덤과 비슷한 자세로 한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 역시 저 자리에 앉아 평생동안 이 마을에서 벌어진 온갖 풍파를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