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 7. 11. 06:00


몇해전 뉴욕.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데 한 백인 할아버지가 날 흔들어 깨웠습니다. 워낙 치안이 좋지 않은 지하철인지라 우선 경계의 눈초리부터 보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며 “한국인이냐”고 물었습니다. 어찌 아느냐고 되물으니 형수가 한국인이라 한국 사람은 대번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할아버지는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거기에 써 있는 노랫말을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간간이 덜컹거리던 적막한 전철 안으로 백인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했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최근 아리랑이 국가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등재한 국가가 한국이 아닌 중국입니다. 아리랑뿐만이 아니다. 판소리, 가야금, 회혼례, 씨름마저 중국의 국가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때 민속음악의 문화유산 등록을 놓고 크게 다퉜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바로 발틱3국의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입니다. 발틱인들에게 민요란 소련의 압제에 대한 유일한 저항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갖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이걸 리투아니아가 먼저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에 등록하는 바람에 사이좋았던 두 나라는 앙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라트비아는 대대적으로 전통 민요집을 발간하고 민요 공원을 조성하는가 하면 또 다른 발틱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세계적인 민요가요제를 여는 등 자신들의 노래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리랑의 국가 무형유산 등재가 중국내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예비 작업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언젠가 외국인이 중국사람이냐고 인사하며 아리랑을 불러주는 끔찍한 현실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