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 7. 15. 06:00




역사에서 아이러니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얼마전 독일여행에서도 이런 아이러니를 만났습니다.

이 여행에선 많은 아름다운 성들을 방문했습니다. 그중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단연 백미였습니다. 디즈니의 로고에도 사용되는, 워낙 유명한 성이니 만큼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문제는 이 성을 만든 사람이 루드비히 2세라는 것입니다. 19세기 바이에른 지역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는 소위 건축왕이라 불립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뿐만 아니라 헤렌킴제 성과 린더호프 성도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을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로 여겼습니다. 절대왕권을 꿈꿨던 루드비히는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호화로운 궁전과 성을 잇달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루이 14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역사의 흐름도 이미 자유주의 시대였습니다.

결론은 비참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부유했던 바이에른은 무리하게 성을 짓느라 재정은 거덜났고, 자신은 암살되었으며, 결국 왕국도 몰락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건축물은 오늘날 독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루드비히가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고, 왕국을 문닫게 할 만큼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은 덕입니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은 통일 후 만리장성, 아방궁, 진시황릉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였습니다. 결론은 독일과 비슷합니다. 노역에 시달린 백성들의 원성과 과도한 재정지출로 진나라는 진시황 사후 15년 만에 멸망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만리장성과 진시황릉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도의 건축왕이자 무굴제국의 황제인 샤 자한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타지마할을 만든 왕입니다. 그뿐 아니라 델리의 대사원인 자마마스지드와 델리성등 지금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대부분 그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국고는 탕진됐고, 결국 아들에게 폐위를 당했으며, 그 막강했던 무굴제국은 그 후 완연한 쇠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루드비히, 진시황, 그리고 샤 자한은 자신의 제국을 망쳤지만 지금은 각 나라의 상징이 된 건축물을 만든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역사는 우리 조상들이 만든 현재다’라고 했습니다. 한 때 위대한 왕으로 불렸던 조상들을 두어서 현재 독일과 중국과 인도는 많은 덕을 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본인과 그 국민들이 치룬 댓가는 너무나 비싼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후손을 위하고자 한 일도 아니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