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입니다. 아직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 언제나 한적한 곳입니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 가는 길은 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입니다. 드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도로 양편에 아름다운 호수가 나타납니다. 푸른 물빛과 초원이 어우러진 풍경은 버스에서 내려 한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이란 이런 곳을 두고 쓰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인 만큼 물도, 초원도, 하늘도 푸르기만 합니다. 







호수 주변은 온통 야생화 천지입니다. 노랗고 하얀 꽃들 사이에서 자색을 띤 엉컹퀴가 유독 외로워 보입니다. 수도사를 닮은 꽃이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들도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습니다. 처음엔 조금만 걷기로 했는데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걷다보니 멈출줄을 몰랐습니다.







주변의 초원에는 말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고삐도 없이 안장을 내려놓고 뛰는 말들은 정말 자유롭게 보였습니다. 마침 어제 비가 왔던 터라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풀과 거침없이 달리는 말이 대비되어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알고보니 말의 주인은 따로 있더군요. 이런 곳에 와서 고삐를 풀어준 말 주인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정말 말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길은 비포장으로 이어집니다. 구비구비 산속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먼 옛날 수도사가 되기 위해 속세를 등진 누군가가 걸었던 길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못할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깊은 회한이 가슴에 사무쳤을까요? 속세에서 걷는 마지막 길은 가슴 시리게 아름답기만 한데....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풀잎이 파도처럼 물결을 치는 그 길을 달리면서 제 마음 또한 사뭇 경건해지고 비장해졌습니다. 







수도원 주변의 지형은 묘했습니다. 마치 베이컨을 쌓아놓은 듯한 땅의 색깔입니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여러 동굴 수도원들이 모여 있는 지역의 총칭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라브라 수도원은 주변 수도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절로 따진다면 여러 암자를 거느린 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뒤편으로는 아직도 동굴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의 거처가 보입니다.







단아한 모습의 동굴거처입니다. 십자가가 걸린 출입문과 작은 창문, 그리고 연통이 있는 수도사들의 방을 엿보고 싶었지만 절대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멀리서 줌으로 땡겨 엿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들같은 여행자들이 수도사들에겐 가장 큰 훼방꾼일 것 같아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침 한 수도사가 성당의 계단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장 뛰어달려가 이것 저것 묻고 싶었습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정말 궁금한게 많습니다. 하지만 굳게 다문 입슬과 사색에 잠긴듯한 표정이 선뜻 다가가기 힘든 경외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도사들의 성당입니다. 내부는 입장이 제한되어 있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난간에 매달린 여행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수도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훑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그런 당신은 또 누구입니까? 서로가 말없이 묻고 답하는 듯합니다.   







이제 라브라 수도원을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갑니다. 우다브노 동굴 수도원들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길은 가팔라도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상쾌한 공기와 가슴이 시원한 전망 때문입니다.







산길을 오르다가 뒤돌아보았습니다. 라브라 수도원이 발아래 보입니다.







산 아래로는 입구에서 보았던 베이컨 같은 땅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산길 옆으로는 긴 철로가 이어집니다. 소비에트 시절 이 지역을 점령하고 군부대를 주둔시켰던

소련군이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모노레일의 흔적입니다. 무척이나 흉물스러웠지만 이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한 조각이니 어찌하겠습니까? 







힘들게 걸어 올라 드디어 우다브노 동굴수도원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돈황의 석굴을 연상시키듯 수백개의 동굴과 벽화들이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대표적인 성화도 그려져 있습니다. 중앙에 예수님이 앉고 그 양 옆에 요셉과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부모마저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독사가 많고 일교차가 극심하여 살기 힘든 이 곳에서 수도사들은  이처럼 작은 동굴을 파고 독거수행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험하고 아슬아슬한 절벽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길의 중간중간에 수도사들의 동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도사들이 서로 교통했던 길이지만  이 길을 따라 몽골군이 침략했고, 1615년 페르시아의 침공때는 샤 압바스라고 불리는 수도사 대학살이 이 길에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소련은 이 길을 따라 들어와 동굴을 차지하고는 군대를 주둔시키기도 했고요. 세속을 떠난 수도사들 마저도 역사의 거센 풍랑앞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인근에 있는 동굴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모였던 집회 장소입니다. 다 함께 모여앉아 식사를 나눌 공간으로도 활용된 곳입니다. 기둥 위에 있는 프레스코화의 주인공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인인데, 평생 기둥 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시몬 성인의 모습입니다.







모든 동굴 내부에는 이처럼 작은 개인 성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작업도 일종의 수행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프레스코화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왼쪽에서 네번째 제자의 뒤에 유다의 그림이 윤곽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를 마치 유령인 것처럼 존재감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가 세 명의 나그네에게 양을 잡아 대접하는 장면입니다. 이 나그네들이 알고보니 천사였다고 하지요? 이 동굴 수도원 곳곳에 이처럼 프레스코화가 많은 이유는 17세기에 이 동굴들이 일종의 예술학교 기능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도사들에 의해 전승된 것입니다. 







우다브노 동굴 수도원들을 돌아보고 산 정상에 섰습니다. 예전에 성당이었지만 소련시절에 군대의 초소로 쓰이던 건물이 보입니다.







수도사와 군인, 여행자, 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스쳐갑니다. 악연인가요?







산 정상으로부터 하산길이 보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길입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낭만적인 길이었습니다. 꽃도 아름답고, 멀리 보이는 대지도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수도사들이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위에 홈을 파 빗물이 흐르게 한 다음 이를 모아서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넓은 바위 곳곳에는 이런 빗물 홈이 많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시 한번 라브라 수도원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여행자들이 떠나고 깊은 밤 정적이 찾아오면 수도사들은 비로소 명상에 돌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 초원사이로 곧게 뻗은 이 길은  수도사들이 등졌던  세속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수도원을 떠나 이 길을 마주하고 선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   저 길의 끝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텐데....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나오면서 뒤돌아본 모습입니다. 낮은 둔덕들이 이어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둔덕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싶은 기분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