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의 고리 인근에는 우플리스치케라고 불리는 특이한 곳이 있습니다. 동굴 집단 거주지역입니다. 멀리서 보면 바위산 전체에 구멍이 송송 뚫린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터키의 카파도키아와 비교하지만 엄연히 그 용도가 다른 곳입니다. 카파도키아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은신처 겸 수도원 역할을 했던 곳이지만 우플리스치케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이루었던 거주지역이었습니다.







동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언덕을 올라가야 하지만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어서 올가가 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곳에 동굴을 뚫고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3,000년 전입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였는데, 철기도 아닌 청동기로 어떻게 바위들을 파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여하튼 청동기를 기반으로 했던 일련의 무리가 이 마을에 거주하면서 우플리치스케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우플리치스케 마을은 바로 앞에 무트크바라 강이 흐르고 있으며 뒤편은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적의 침략을 막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위치입니다. BC6세기 경부터 이 마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점차 태양신을 모시는 종교도시로 발전해 갔습니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코카서스 지방은 해를 숭배하는 종교가 가장 성했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기존의 태양신과 관련된 흔적은 철저히 파괴되고 맙니다. 그래도 동굴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새로 이주해온 기독교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계속 이용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기존 동굴에 새롭게 돌을 쌓아 주거지를 보강하는 작업도 진행되었습니다.







천연바위를 이용하여 물을 저장하는 저장탱크도 만들었습니다. 빗물을 모으기도 했고 아래의 무트크바라 강에서 물을 길어와 저장하기도 했습니다.  







10세기 경에 세워진 우플리시트술리스 교회입니다.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는게 믿기지 않아서 가까이 가보니 역시나, 새롭게 복원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건물은 복원되었더라도 마을의 가장 높은 곳 중심지에 교회가 세워진 모습은 구조상 중세 서유럽의 마을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마을 사람들은 뭘먹고 살았을까요?  그 궁금증은 마을의 꼭대기에 올라서는 순간 금방 해결이 되었습니다. 도도한 강물을 따라 비옥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좋은 조건에 비옥한 농토까지 끼고 있다면 마을이 발전하는데는 완벽한 조건이 충족된 셈입니다. 3,000년 전부터 최근까지 이 동굴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굴마을이 순탄한 역사를 가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곳 역시 아랍민족의 침략을 받았고, 12세기에는 몽고의 침입을 받아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을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이번에 돌아본 우플리스치케 마을은 원래 규모의 10%도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멀리까지 주거지의 흔적이 보입니다. 11세기 초에는 실크로드의 교역로상에 위치하면서 한때 인구가 2만 명이었다고 하니 대단히 큰 도시였습니다. 11세기에 인구 2만 명이라면  지금으로 치면 인구 30만 명 도시에 버금가는 큰 도시였던 것입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동굴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언젠가 그루지야 사회가 안정되고 나면 아무 곳이나 올라가 보지 못하도록 통제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바위 동굴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강 건너 고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플리스치케 마을의 제일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타마라 여왕의 홀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천연바위를 그대로 깎아 기둥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강가를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묘하게도 그루지야는 가는 곳마다 마냥 걷고 싶은 풍경이 나타납니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에서는 황량함과 적당한 스산함이 걷고 싶게 했는데, 이 마을은 무언가 모를 포근함이 또 걷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약간 먼발치에서 마을을 보았습니다.  저 동굴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생활했을 과거의 사람들을 상상해보니 새삼 아련한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강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13세기의 몽골군은 뒤의 산을 넘어 질풍처럼 밀려와 순식간에 2만 명이 모여 살던 이 독특한 마을을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몽골군의 위력은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나 봅니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동유럽권까지 각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몽골군의 침입에 관한 내용이니까요.  







마을을 떠나면서 한번 더 뒤돌아 보았습니다. 왠지 저 휑한 동굴이 입을 열어 무언가 말을 할 듯 보였습니다. 







마을 정상의 교회옆에 연인들이 매달아 놓은 사랑의 맹세 리본이 마치 꽃뭉치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자유스럽지 못했던 우플리스치케 마을... 그 격변의 최후 승자는 교회였던가요? 결국 마을에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교회였습니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아우르며.....







마을에서 내려오는 길은 인공적으로 뚫은 터널을 통해서였습니다. 적군의 침입시 비상탈출구로 사용하기도 했겠지만 강가에서 물을 길어오기 위한 지름길로도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